[임철순 칼럼] 빈 자리 채우기 ‘스무고개’

입력
2014.10.17 16:26

‘위’의 눈치보고 비위 맞추느라

장관도 행사하지 못하는 인사권

누굴 시킬지 미리 물어야 할 판이니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 임명이 계속 미뤄지는 이유를 “청와대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 용기 있게 또는 숙맥처럼 대답한 기관장은 일찍이 없었다. 질문을 한 의원도, 성실하게 대답한 본인도 당황한 끝에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정부 인사의 속살과 민낯이 이렇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나 청장이 그날 “위에서 허가해야 한다”고 말한 그 ‘위’가 요즘 정말 문제인 것 같다. 기관장의 임용 제청권을 무시하거나 각 기관 소속원들의 집합된 의견이나 총의를 인정하지 않는 게 버릇이 된 것 같기 때문이다. 인사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7월에 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실이 신설됐는데도 달라진 게 전혀 없다. 권력 내부의 알력이 심해진 탓인가.

지금 전통문화대 총장은 7개월, 한국체육대 총장은 19개월, 아시아문화개발원장은 17개월째 공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김종덕 장관이 8월에 취임했는데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아시아문화개발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립오페라단 등 산하기관 네 군데는 최대 17개월까지 기관장 공백 상태다. 영화진흥위원장은 3월 말, 영상물등급위원장과 한국저작권위원장은 6월 말로 각각 임기가 끝났지만 후임자가 없어 계속 눌러앉아 있다.

이로써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위’ 때문에 장관을 비롯한 기관장들이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때 책임총리니 책임장관이니 하는 말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권한은 주지 않고 잘못되면 책임만 지라는 식이다. 그것은 횡포다. 이런 판에 누가 소신 있게 일을 하며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려고 노력하겠는가. 적재적소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

인사횡포의 압권은 국립대 총장 임명이다. 국립대 총장은 대학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 2명을 확정해 교육부에 추천하면 교육부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최근 류수노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의 총장 임명제청을 거부했다. 한국체육대는 총장 추천위원회를 거쳐 네 차례나 총장후보 임명제청을 요청했지만 다 거절당했다. 교육부는 두 대학에 이유는 알려주지도 않고 재추천하라는 공문만 보냈다. 퇴짜를 맞은 공주대 총장후보 김현규 교수는 교육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겼지만 교육부는 묵묵부답이다.

이렇게 공석이 많은 터에 정작 몇몇 임명한 사람들은 낙하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심지어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직의 경우 ‘꼼수 인사’라는 말이 들린다. 공단은 전임 이사장이 물러난 뒤 반년 가까이 가만히 있다가 올해 2월 28일 공모 절차를 밟아 박 대통령의 지역 대선조직을 이끈 사람을 새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돼 2월 11일까지는 응모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관리들의 산하기관 진출에 제동이 걸리자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권 인사들이 금융기관의 감사나 사외이사 직을 차지하는 현상도 더 심해졌다.

이제 공직 인사를 하려면 ‘위’에서 생각하는 적임자를 알아맞혀야 할 판이다. “동물성입니까, 식물성입니까, 광물성입니까?” 이렇게 스무고개 하듯 질문을 먼저 던져 정답을 찾아내야만 위와 아래가 다 함께 편안해진다. 그 과정에서 누가 망신을 당하든 인사의 부작용과 문제점이 불거지든 말든 그런 건 그들이 알 바 아니다.

그런데 이게 다 누구 탓일까.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최근 어떤 월간지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과거 정권처럼 자기 동창이나 동문을 챙긴 적이 없다. 선거 때 도와준 인사는 무조건 요직에 앉힌다고 비판하는데 박 대통령은 절대 그런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동창이나 동문을 챙기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역차별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데 왜 이런 인사 난맥과 횡포가 벌어지는 것일까.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그 정체가 동물성인지 식물성인지 광물성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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