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의 얼기설기]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

입력
2015.03.15 16:24

로봇 등장 '기자' 직업 사라질 수도

기술 발달은 노동자 실직 불러와

창의적 인재·능력발휘 환경 절실

오늘 신문에 실린 기사는 모두 기자가 직접 쓴 글일까? 1980년대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예상한 2015년에는 사건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작성하는 로봇이 등장한다. 영화에 나오는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악당의 체포를 취재하는 로봇만큼은 성공적으로 예측한 미래기술이다. 이미 일부 언론매체를 통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기사를 만날 수 있다. 미국 LA타임스는 지진 발생 보도를 컴퓨터에 의존한다. 지진 발생 소식이 지질조사국으로부터 접수되면 지진의 발생 지역 및 강도 등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송고까지 마친다. 이를 통해 아주 작은 규모의 지진도 몇 분만에 인터넷 신문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뿐 아니라 AP통신은 기업의 실적 발표 기사를 기계에 맡긴다.

정보를 수집하고 이로부터 의미 있는 것을 추출한 뒤 기사로 작성하는 ‘로봇 저널리즘’은 원래 기자를 보조하는 도구였다. 뉴스를 제작하는 동안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제안하거나 녹취 자료를 글로 전환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수집된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여 직접 기사를 작성할 만큼 기술이 발전하였다. 물론 아직은 최종적인 검토나 결정은 사람의 손을 거친다. 또한 로봇 저널리즘은 스포츠나 금융 등 정량화된 수치가 많아서 컴퓨터가 해도 아주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영역을 담당한다. 하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생각한다면 기자라는 직업이 세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삶이 윤택해지고 여유로운 인생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막연히 한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의 가전제품이 주부의 고된 가사노동을 줄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전자제품의 출현은 도리어 보다 많은 가사일을 하게 만든다. 세탁기가 빨래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다소 줄여주었지만, 그렇게 남게 된 시간 동안 편안한 휴식보다는 청소나 요리 같은 다른 일을 하게 된다. 가전제품의 도움을 받지 않을 때는 하룻동안 처리할 수 있다고 기대했던 일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을 때는 답을 기다리는 데 며칠씩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전화가 등장하면서 즉시 답을 들어야만 하는 시대가 열렸다. 인터넷을 통해 수백쪽 분량의 자료도 순식간에 전달된다. 과거에는 며칠의 여유를 갖고 처리하던 일을 몇 분안에 마치지 못하면 순식간에 무능한 사람이 된다.

농기계와 건설장비의 발전은 해당 산업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실직을 불러왔다. 공장의 자동화는 단순 노동자뿐 아니라 숙련공들까지 차차 생산현장에서 사라지게 한다. 물론 로봇이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자동차를 통해 그와 관련된 판매, 수리뿐 아니라 주유소, 레저 등의 산업이 성장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로봇에게 직장을 내어준 개인의 입장에선 그간 익혀온 지식과 연륜을 희생할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기사 작성과 같이 인간의 지능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파고 든다. 아주 먼 미래에는 모든 일을 기계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단순 보도가 아닌 분석이나 주장이 담긴 글은 아직 사람의 영역이다. 감성적인 시와 소설 역시 컴퓨터가 쓰기엔 무리이다. 상대성이론도 로봇이 만들어낼 수는 없다. 영감을 발휘하고 깊은 분석을 하는 건, 적어도 한동안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기계에 지배당하는 암울한 미래를 겪지 않으려면 창의적인 인재가 길러지고, 이들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뭔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ㆍ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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