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연의 사이아트] 은퇴 계획에서 얻은 지혜

입력
2015.03.22 17:42

너도나도 DSLR로 사진작가 위협

정보의 프로 독점 갈수록 좁아져

권력 분산해 역할 변신 모색해야

몇 년 전까지도 친구들 만나는 자리에서 예술이나 사업하는 소위 자유업보다 기업이나 대학 등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월급쟁이들 목소리가 컸다. 이게 최근 반전되었다. 자유업 친구들은 소위 은퇴라는 게 없지만 직장에서 일하는 나는 다르다. 은퇴 다음 날부터 평생 해온 일을 중단하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은퇴라는 단어가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 다음으로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날 때마다 적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대부분 취미 소일은 될지언정 직업으로 승화할만한 아이템은 아니다. 그 중에도 단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사진 촬영! 그래, 바로 이거다. 카메라 들고 사진 찍기 시작한 고교 1학년 이후 카메라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도 얼리어댑터였다. 비록 전문 사진작가는 아닐지언정 수십 년 사진을 찍었으니 나름대로 경쟁력 있지 않겠나? 게다가 예전 필름 시대와 달리 촬영에 큰 돈도 들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은퇴 기념 전시회도 열고, 매년 개인전도 하겠다는 등 나름대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 놓았다.

그런데 세상일이 항상 생각과 같지 않다. 작년 봄, 중국 어느 작은 도시에 갈 일이 생겼다. 시내 중심가는 서울 인사동이나 북촌처럼 옛 것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런 탓인지 주말을 맞아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행락객 모두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똑딱이가 아니라 렌즈통이 대포처럼 긴 SLR이 태반이다. 옷차림 보아하니 타지 관광객은 아니고 현지 주민이 분명하다. 도시민 절반이 사진작가인 시대가 된 것이다.

중국 인구를 반올림해서 14억이라고 치고 그 중 0.7%가 아마추어 사진사라고 하면 1,000만명의 경쟁상대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확률적으로 내가 경쟁력 있는 사진작가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이다. 나 뿐 아니라 아마도 전문 사진작가들은 어느 때보다 위기를 느끼고 있을 게다.

이런 현상은 단지 카메라만이 아니다. 어느 분야 막론하고 일반인들이 전문가 못지 않은 전문성을 뽐내고 있다. 특히 정보에 기반한 분야일수록 아마추어의 프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더군다나 프로들은 개별적으로 일하는데 반해 아마추어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협업을 한다. 이들은 황우석의 논문 조작을 들춰냈으며, 크림빵 뺑소니 사건의 단서를 찾아냈다.

이런 현상은 단지 아마추어의 프로화를 넘어선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라. 권력은 정보에서 나온다. 정보를 움켜잡으면 권력이 발생하고 유지된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확산으로 정보를 독식할 수도, 독점할 수도 없을뿐더러 일반인도 양질의 정보를 생산하는 엘리트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반면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직종들은 시험대에 올랐다. 예를 들어 강의라는 형태로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교수법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더 멋지고 재미있는 강의가 인터넷에 수두룩하다. 교수만 그렇겠는가. 요즘 병원 찾는 사람치고 어디가 왜 아픈지 몰라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까운 미래에는 법관보다 다수의 아마추어나 인공지능이 더 현명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지도 모른다. 정보와 지식에 기반한 다른 직종들-디자이너, 변호사, 기자,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런 직업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그들의 역할과 비즈니스 모델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정보의 형태를 띤 권력 분산이다. 정당들이 모바일 앱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앱이 정당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기존 홈페이지의 모바일 버전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고 시민이 자발적으로 거기에 참여하도록 말이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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