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연의 사이아트] 박물관은 살아 있다

입력
2015.05.17 14:26

오늘 유네스코 정한 '세계박물관의 날'

박물관 중에서도 으뜸은 자연사박물관

국력 걸맞은 건립 논의 어서 시작해야

계절의 여왕인 5월은 연중 가장 날씨도 좋지만 노는 날도 꽤 있어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있고,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근로자의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가정의 날, 입양의 날 등 ‘인간적’인 기념일들이 포진해 있어서 그 동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살던 우리에게 주변을 둘러보고 서로의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게 한다.

5월 18일도 기념일이다.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동시에 성년의 날이다. 이건 우리나라의 기념일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박물관의 날이기도하다. 과학의 날, 발명의 날, 납세자의 날, 예비군의 날 등과 마찬가지로 박물관의 날이 무엇을 기념하는지, 특별히 우리가 할 것이 있는지 아리송하기도 하려니와 이런 날들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넘어가기 일쑤이긴 하지만, 세계 과학과 문화와 교육을 관장하는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날이니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실, 박물관은 문화 체험의 꽃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가봄직한 박물관이 꽤 많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전국에 약 1,000개가 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수요일 문화 체험일에 박물관 한 곳에 간다 치자. 그러면 모두 가보는데 80년 넘게 걸린다. 아무리 박물관 애호가라도 죽기 전에 가보기 불가능한 숫자다. 종류도 많다. 장난감박물관, 자동차박물관, 소리박물관, 로봇박물관, 게임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과학관, 미술관, 심지어 술박물관도 있다. 그런데 자연사박물관은 뭐하는 곳일까? 만일 박물관 왕국이 있다면 그 중 왕에 해당하는 박물관은 국립자연사박물관이고 여왕은 국립미술사박물관일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연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지구가 생겨나기 이전의 우주부터 시작해서 지구, 생명체 그리고 150억년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인류가 쌓아놓은 문명과 테크놀로지와 문화 전반을 다룬다. 반면, 미술사박물관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인공물들, 특히 예술적 가치가 있는 유산과 미술품들을 전시한다.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역사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 격이다. 박물관의 성격으로 본다면 워싱턴 디시에 있는 미국역사박물관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중간 정도가 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뿐 아니라 주요 도시나 지자체에도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국립박물관들이 12곳이나 있다. 반면, 아직 우리나라에는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소규모 자연사박물관이 몇 곳 있긴 하지만 국가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없다.

자연사박물관이 왜 중요할까? 당장 눈앞의 세계가 아니라 시공간을 넓게 펼쳐 줌으로써 우리의 감각을 확장해 준다. 그리고 정치나 이데올로기나 경제적인 관점이 아니라 자연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다. 무엇보다 자연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와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자연계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과학 조기교육의 핵심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의 대중화, 일반 국민의 과학적 마인드를 높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자연사박물관이다. 글쎄, 통계조사는 하지 않았지만 노벨상을 배출한 국가에는 모두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있을 거다.

분야를 막론하고 애정과 호기심 없이는 발전하기 어렵다. 특히 과학 분야는 더 그렇다. 가뜩이나 어렵고 힘들고 경제적인 보상도 크지 않은 과학 연구에서 연구자의 애정과 호기심은 과학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지난 주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제회의가 하나 열렸다. 마침 올해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지 10년 째다. 해외 전문가들은 짧은 기간에 중앙박물관이 이룩한 성과에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실은 오늘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있기까지 약 70년 걸렸다. 아마 제대로 된 국립자연사박물관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구축하려 하지 말고 조금씩 쌓아 나가자. 지금부터 시작하면 서기 2100년에는 우리 국력에 걸맞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이 땅에 생길 것이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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