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 칼럼] 벽화관광에서 마을박물관으로

입력
2015.05.19 14:03

낙후된 이화동 벽화마을 탈바꿈한 뒤

수년 전부터 '마을박물관' 프로젝트

주민 참여 협력 통한 마을 변신 주목

옛 한양을 감싸는 4개의 산이 있다. 이 가운데 낙산은 높이가 낮고 뚜렷한 봉우리가 없어서 다른 3산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다. 다른 산의 아래에 왕궁과 상류층의 주거지가 형성되었지만 낙산은 숲과 텃밭이 어우러진 풍류의 자연 정도로 남아있었다. 이 일대의 본격적인 개발은 해방 후 환국한 이승만이 이화장에 거처를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말에 대한주택영단이 200여 세대에 가까운 ‘영단주택’을 건립했다. 1층은 시멘트 블록, 2층은 목조로 지어 일본식 기와를 얹은 연립주택이었다. 그 구조법과 외형이 일본식 주택과 유사해서 일제가 남긴 적산가옥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2층에는 작은 테라스도 있어서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타운하우스나 테라스하우스의 원조쯤 된다.

건립 당시에는 상류층이 선호하는 최고의 주택지였다. 그러나 서울이 확대 발전하고 강남의 아파트가 새로운 주택으로 대세를 이루면서 이 동네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았다. 몇 영화에서 범죄현장의 배경으로 그려지는 등 일반 시민들에게는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2006년 일단의 예술가들이 이화동 마을 곳곳의 계단과 건물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젬마 등 공공미술을 표방한 유명 작가들이 그린 수준 높고 친근한 그림들은 이 마을을 가장 유명한 벽화마을로 바꾸어 놓았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스산했던 마을은 젊은 외지인들로 북적댔다. 주민들은 유래 없는 세간의 관심을 반겼으나 점차 사생활을 침해 당하고 주민 소득에는 별로 도움 없이 쓰레기만 남기고 가는 벽화 관광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탤런트 이승기가 CF를 찍어 유명해진 ‘천사의 날개’를 주민들이 지워버린 사건까지 발생했다. 가장 중요한 주민들의 정주권은 오히려 침해되고 외부인들의 잔치로 끝나기 때문이었다.

최근 이화동마을에는 또 다른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인데, 마을 곳곳에 15개의 작은 박물관을 세워 운영하는 내용이다. 일대에 연고를 가진 문화예술인들이 쓰러져가는 이화동 영단주택들을 매입하고 고쳐서 공공적인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숭동 쇳대박물관의 주인인 최홍규 관장을 중심으로 건축가와 작가들이 참여한지 벌써 4년째를 맞는다.

이러한 순수한 민간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서울시가 매입한 10채의 빈집들도 이 프로젝트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술 공예품을 전시한 박물관은 물론이고 봉제박물관, 장난감전시장, 책 공방, 부엌용품 박물관 등 소재와 내용도 친근하고 다양하다. 이 가운데에는 이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도 꽤 많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곳은 주민협의회가 직접 운영하는 이화동 마을박물관과 마을 텃밭이다. 주민 참여와 협력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마을재생 프로젝트가 종종 주민들은 소외된 채 외부 전문가와 지자체가 계획하고 실행하던 일회성 전시행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이어서 더 반갑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공공 문화 프로젝트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든다. 이화동 주민협의회는 이 문제까지 대안을 갖고 있다고 한다. 주민 살림집의 일부를 개조해서 작은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임대소득과 박물관 판매 수입으로 주택 개조비용을 충당하고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 정주권을 튼튼히 하려는 계획이다.

이 봄이 다 지나기 전에 이화동으로 가자. 문화와 예술을 품은 계단과 골목의 정취를 느끼고 한양 성곽과 영단주택들의 역사를 체험하자. 화사한 서울 시내의 풍경도 감상하자. 곳곳에 문을 열고 있는 박물관에서 간단한 작품도 사고 차도 마시고 주전부리도 먹어보자. 그래서 이 의미 있는 마을 재생의 노력에 동참하자.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ㆍ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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