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칼럼]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

입력
2015.12.01 10:00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철학, 문학, 예술, 역사, 언어, 정치, 사회, 종교 등 다양한 인문학 분야들을 통해서 자아, 타자, 세계의 경험을 표현하여 왔다. 인문학에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새로운 물음들을 통한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유하기이다.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문학자의 위대성은, 해답이 아닌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는 점에 있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불경심’과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은 인문학의 의미와 그 사회정치적 함의를 잘 드러낸다.

질문은 심오한 사유의 세계로의 초청장이다. 비판적 사유란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왜’라는 물음표를 붙이게함으로써, 현상유지를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는 “위험한 사상이란 없다. 사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다”라고 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누리는 자유의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니체는 ‘저항의 정도’라고 말한다. 현대의 다양한 인문학적 담론들은, 비판적 사유와 저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확장을 위하여 약자들과의 연대와 사회적 책임의 의미를 인식하게 하는 것은,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누구의 저항이며 무엇을 위한 저항인가를 점검하는 것은 중요하다. 저항이란 권력을 지닌 이들이 약자들에 대한 진압 방식으로 쓸 수도 있으며, 반대로 권력의 중심부 밖에서 자유와 평등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변혁을 모색하는 방법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항에 ‘비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이다. 현대의 인문학적 담론들은 이러한 비판적 저항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판적 저항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을 지닌다.

첫째, 정치적 저항이다. 세계화 이후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는 깊숙이 얽혀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세월호 문제, 난민 문제, 노동 문제, 테러 문제 등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의 정치적 정황은 우리에게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한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억압하는 정치, 다양성을 차단하고 획일화하는 정치, 또는 다양한 양태의 적대와 배제를 제도화하는 정치 체제들에 문제제기를 하고 변혁을 요청하는 정치적 저항은 인문학적 담론들의 실천적 개입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둘째, 사회적 저항이다. 현대사회를 분석하고 조명하는 데에 사용되는 분석적 틀들이 있다. 젠더, 인종, 계층, 나이, 장애, 성적 성향, 또는 국적 등과 같은 분석적 렌즈를 가지고서 사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층적 차별, 배제, 억압의 문제를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과 억압을 ‘정상-비정상’의 담론들로 정당화하는 사회적 가치구조를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적 저항의 차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과제이다.

셋째, 종교적 저항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는 억압과 해방이라는 두 종류의 상충적인 역할을 해 왔다. 종교는 인간에게 해방과 자유의 삶을 마련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신이나 진리의 이름으로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폭력 기제들을 정당화하여 왔다. ‘진리의 테러리즘’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신의 이름으로 여성, 성적 소수자, 타 종교에 대한 배제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종교에 대하여 분석하고,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저항 정신은 주요한 인문학적 가치인 평화, 평등, 정의의 확산과 실천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넷째, 윤리적 저항이다. 윤리적 저항은 이전의 세 가지 저항과 조금 다른 특성을 지닌다.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저항이 제도와 구조적인 면에 그 초점이 있는 반면, 윤리적 저항은 개별인들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적 저항은 다른 세 차원의 저항들에 자신을 개입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윤리적 저항을 통해서 자신 속에 있는 인간으로서의 이기성, 권력에의 집착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게 된다. 이러한 윤리적 저항은 ‘너/그들’을 악마화하지 않게 하며, 자신 속의 인식의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윤리적 저항은 나의 살아감이란 결국 타자들과 ‘함께-살아감’이라는 인식을 하게 함으로써 정치, 사회, 종교적 억압과 차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자신을 기투(企投)하도록 한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우아한 문화활동이 아니다. 나, 타자,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과 마주하고 씨름하는 치열한 행위이며, 비판적 성찰과 고뇌의 시간을 통해서 비로소 조금씩 이 세계를 향하여 자신을 기투하고 개입하는 사유이고 실천이다. 인문학적 소양이란 확실성을 경계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사유하기, 고정된 정답 찾기보다 새로운 질문 묻기를 배우기, 그리고 상투성에 저항하고 자명성에 물음표 붙이기 등을 통해서 비로소 그 싹이 돋아나게 된다.

인문학을 단순한 문화활동의 영역으로만 이해할 때, 그 인문학은 탈정치화되고 탈역사화된다. 그러한 인문학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사회나 세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게 하고, 구체적인 변화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실천적 삶에 무관심하게 한다. 인문학을 문화적 활동으로만 이해하도록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위험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이 인문학을 탈정치화함으로써 인문학이 지닌 중요한 비판적 성찰과 세계에 대한 개입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비판적 성찰, 해답 찾기가 아닌 새로운 물음 묻기를 통한 세계 개입, 그리고 인류의 보편 가치로서의 정의, 평화, 평등, 연대의 가치를 더 확장하고 실천하기 위한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이 그 기능을 할 때, 비로서 인문학적 정신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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