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칼럼] 우리 속에 있는 ‘아베’ 깨우기

입력
2016.02.14 20:00

굳이 아베가 아니라도 좋다. ‘핵무기다’ ‘생화학무기다’ 거짓 정보로 이라크 침략을 선동했던 조지 부시라도 좋고, 시리아를 내전 상태로 몰고 간 아사드라도 상관없다. 국익을 뒤로 감추고 제 잘못 사과하기를 거부한다면, 거짓 속에 숨긴 ‘미제’의 진면목이 드러나도 후안무치 하다면,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자기 민족이 분열 이산되는 것도 수수방관하는 낯짝이라면, 이들은 모두 ‘아베’류로 간주한다.

아베는 일본 유권자의 신임으로 장기 집권의 권좌를 누리고 있다. 거침없는 행보로 일본 우익의 쌍수환영을 받으며 평화헌법까지 손대려 한다. 2차 대전 전, 외조부가 누렸던 ‘영광’의 시대를 곧 회복할 것만 같다. 그는 20세기 초반 한국과 동남아에 저질렀던 일제의 포악한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강대국 논리에 서서, 일제가 동남아를 구미제국의 침략으로부터 해방, 보호, 근대화시켰다고 궤변을 떤다. 이런 자폐적 병리에 갇혀있다 보니 세계가 공분하는 ‘위안부’ 문제 등 반인륜적 행위도 눈감아 버린다.

아베와 부시를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들을 비난하는 우리 속에는 아베적 속성이 없는지를 성찰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런 사고를 선망하며 행동하지는 않는가. 아베는 국익 뒤에 숨어서 저지른 조상의 침략행위를 반성은커녕 정당화한다. 부시는 ‘세계평화’로 포장한 제 나라 국익을 위해 이라크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참회가 없다. 그들이 내세운 정의니 인도니 하는 것은, 단재의 말을 빌리면, 야차(夜叉)의 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 침략행위가 국익과 결부되면 진출이 되고, 학살도 평화로 포장된다. 국익에 갇힌 정의, 그것은 공의(公義)일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나 부시는 우리의 반면교사다. 그들 반면교사 앞에서 우리는 자유로운지를 묻는다.

20여년 전부터 외국인근로자를 섬기면서, 우리 속에 있는 제국주의적 ‘갑질’ 행태를 자주 보았다. 일제가 조선민중을 차별ㆍ억압했던 것은 민족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받았던 한국인은 동남아 지역에서 온 엘리트 젊은이들에게 과거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차별을 고스란히 되갚아주었다. 민족이 달랐기 때문이다.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받았던 조선민족이 역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민족을 억압하다니, 이것은 우리 속에 일제가 부활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고서야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정의 인도를 입에 올릴 수 있을까. 부끄럽다.

과거 우리는 평화민족으로서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베트남 참전으로 그런 신화는 깨졌다. 베트남 참전은 자유세계를 수호한다는 명분 뒤에 국익을 감추고 이뤄졌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참회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보편적 가치에서 본다면, 자의로 참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의 책임이 모면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게 반성ㆍ사과를 촉구하면서 베트남에 대해 침묵한다면 표리부동이요 이중적이다. 아베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 이상의 엄격한 자기반성이 먼저 필요한 이유다. 어쩌면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먼저 베트남 국민을 향해 진솔한 사과를 해야 한다. 민간 차원의 것 못지 않게 국가적 차원의 사과와 피해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이게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건강성이요,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길이다.

백범 선생은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읊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백범이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다는 구절을 반면교사로 후손에게 전했을까.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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