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덕 칼럼] 알파고가 던진 메시지

입력
2016.03.24 13:53

알파고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대국이 끝난 지 두 주가 다되었지만, 국내 언론의 지면에는 인공지능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대중문화계는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데 여념이 없는 한편, 이에 못지않게 유행에 민감한 우리 정부는 몇몇 인공지능 연구 지원대책을 속성으로 내놓았다. 이런 붐 속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각종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예측들은 때론 잿빛, 때론 장밋빛이지만, 모두 인공지능이라는 기술발전에 대한 인간의 통제 가능 여부를 핵심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 기술이 야기할 효과에 인간이 끌려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그들의 삶을 위해 이를 조정할 것인가.

인간이 기술발전과 이에 대한 통제 문제를 고심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럽에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19세기 전반기, 이 문제는 서양 사회의 공적 영역을 달군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그 당시까지도 유럽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농민들은 일광, 날씨, 그리고 계절의 변화 같은 자연의 훈시에 따라 노동의 양과 방식을 스스로 조절하며 살았다. 그들에게 여름과 겨울의 아침은 결코 같은 아침이 아니었다. 이미 빛이 내린 여름의 아침에는 일터에 있었지만, 깜깜한 겨울 아침은 늦잠과 휴식의 시간이었다. 산업화는 이런 그들의 삶을 뒤흔들었다. 빠르게 반복되는 기계 리듬에 따라, 그리고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시간표에 따라 일하는 노동자로의 변신은 엄청난 정신 및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였다. 겨울과 여름의 아침은 똑같이 ‘출근시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농사짓다 졸음이 왔을 때 자연스레 그늘 아래 낮잠에 빠지던 사람들은 이제 엄격히 구분된 작업시간과 휴식시간의 틀에 적응해야 했다.

이 같은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온 산업화에 대해 인간이 목소리를 내었던 것은 당연했다. 가장 과격하게는 기계를 없애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공장 운영체제와 인간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조화시켜 보자는 주장이 더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기계화가 생산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해주며 궁극적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한다는 논리 앞에 번번이 밀렸다. 그리고 이 논리는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개별 경쟁을 독려했던 당시 자본주의 경제관과 결합되며 더 큰 힘을 얻었다. 다행히도, 인간은 기계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환경에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면서 이를 버텨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몇 세대의 희생이 대가로 있었지만 말이다.

인간이 산업화 초기의 대변동에 적응할 무렵이던 19세기 말, 제 2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기술발전이 그들의 삶에 찾아왔다. 중화학 공업의 대두로 요약될 수 있는 이 혁신은 공장의 대규모화 및 자동화와 같은 외형적 변화와 더불어 그 내부 조직 방식의 혁명도 수반하였다. 미국의 엔지니어 프레드릭 W. 테일러의 이름을 딴 테일러주의의 가르침 아래, 기업가들은 노동자 또는 사무원들의 작업을 세분화하고, 이 각각에 최적화된 동작을 연구하며, 이에 대한 효율적 관리를 위해 현장을 재조직했다. 그 결과, 위에서 설계한 공간에 속해, 위에서 정해준 작업을 따라 하는 것이 되고만 인간의 노동은 자율성과 위엄을 대부분 상실했다. 노동이 쉽게 대체 가능한 것이 되면서 관련 직업군들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물론 기업가들을 보좌하는 전문직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었지만, 그들의 비중은 사라지던 일자리에 비할 수 없었다. 19세기 전반기와 마찬가지로 기술혁신을 보다 인간 친화적으로 이용하여 인간 중심의 노동 환경을 건설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지만, 역시나 효율성 제고와 경쟁력 확대, 그리고 풍요로운 미래의 도래라는 논리 앞에 별 힘을 쓸 수 없었다. 오히려 내적 동력이 생겨버린 테일러주의는 더 진화하여, 조직의 효율적 관리법을 전문으로 하는 경영학과 행정학 같은 응용학문까지 탄생시켰다.

인간이 인공지능이라는 기술혁신을 통제해서 인간을 위해 이용할 수 있다는 예측은 역사를 보았을 때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효율성 추구와 경쟁에서의 승리가 우선 목표가 되는 사회에서는 말이다. 알파고가 능력을 과시한 무대였던 프로 바둑이 오직 대국, 즉 경쟁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하는 세계라는 점은 기억되어야 한다. 알파고는 ‘승리’만을 위한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데에 있어서 인간 최고수를 능가하였다. 아마도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가 기준이 되는 모든 분야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가치를 탯줄로 성장한 수많은 전문직들은 사라져 갈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 중 더 많은 부분은 프로 바둑처럼 이기는 것이 곧 최선이 되는 대결의 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를 소위 주도한다는 사람들은 이 자명한 사실에 둔감한 듯하다.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라는 가치 아래 현재 대학의 구조조정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그 비근한 예이다. 알파고 충격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제 그 가치를 내려놓으라는 것 아닐까.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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