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덕 칼럼] 미래와 가까운 과거

입력
2016.04.07 14:18

총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거리의 나무들을 이리저리 붙잡고 있는 수많은 현수막들과 만개한 벚꽃들 사이로 넘어 드는 확성기 소리가 선거철임을 실감하게 한다. 총선이 항상 같은 계절에 치러져서 그런지, 그 모습들은 너무도 익숙하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낯익은 것은 선거 운동 당사자들과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총선 담론들이다. 그 중 우리나라 총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주 소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미래 담론이다. ‘우리 정당이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정당이고, 모 정당에게 투표한다면 미래는 어둡다.’ ‘이번 선거로 우리나라와 이 지역의 미래가 결정된다.’ ‘나는 구시대 인물이 아닌, 미래의 일꾼이다’ 등. 향후 4년간 우리나라 의정활동을 책임지려는 이들이 이런 ‘미래지향적’ 구호를 내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의회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실행된 19세기 말 이래로 이를 선도해온 국가들의 총선에서 중핵이 되었던 담론은 미래보다는 가까운 과거에 향해있었다. 그곳에서의 선거 운동은 대개 그 직전 임기 동안의 집권당 주도 입법 활동의 결과물인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총선의 향배는 그것에 따라 결정되었다. 노동당에게 사실상 최초의 집권 기회를 주었던 1929년 영국 총선은 당시 치솟는 실업률을 잡지 못했던 보수당 정권에 대한 심판의 장이었다. 보수당 장기 집권의 서막이 된 1979년 영국 총선 역시 1970년대 중반 이후 서방 경제를 괴롭혀 온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당시 집권 노동당의 ‘부적절한’ 대응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었다. 사민당에게 재집권을 안겨준 2002년 독일 총선도 기존 사민당 정부의 유로화 도입 정책 결과 및 이라크 전쟁 반대 선언을 둘러싼 공론들로 점철된 채 진행되었다. 집권당을 심판했건 또는 재신임했건, 의회민주주의 역사가 깊은 나라들 선거 운동의 핵심은 가까운 과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억과 해석 즉, 직전 임기 중 집권당 정책에 대한 평가였던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까운 과거에 대한 구체적 기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선거의 주요 모티브가 되었던 곳들도 20세기 유럽에 존재했다. 이런 현상은 산업화 초반 기반시설에 대한 집중 투자로 인해 경제는 외형상 가파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취하지만, 한편으로 그 급박한 변동 속에 수많은 내적 모순이 생겨났던 비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주 나타났다. 여기에서 그 내적 모순은 미래로의 발전을 위해 망각되어야 하는 지나간 일일 뿐이었다. 1937년 스탈린 치하 소련은, 비록 서양식의 자유민주주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신헌법에 준해 총선을 치르게 되었다. 이 때, 불과 수 년 전 농업 집단화 과정 중 저질러진 정부의 계속된 실정과 그로 인해 야기된 기근을 비롯한 인적, 물적 피해는 잊히거나 최소한 감추어져야 했다. 가까운 과거에 대한 기억을 대신해서 선거 운동 기간 중 전 소련을 덮었던 담론은 산업화가 가져올 것이라는 ‘찬란한 미래’였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수많은 선거 선전물들은 직전의 실정과 현실의 고충을 잊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메시지였다.

미래 담론이 우리의 선거 때마다 주 소절이 되는 것은 실은 개발독재와 경제성장이 어우러졌던 시대의 유제이다. 당시, 자고 일어나면 도로가 놓이고 공장과 건물이 새로이 들어서던 광경은 발전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키워내었던 동시에, 그 압축적 근대화 속의 실정과 폐단을 차분히 돌아볼 틈을 주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아니다. 저성장 국면의 지루한 물결을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헤쳐가고 있는 오늘날에 ‘과거는 잊고 미래로 함께 달리자’라는 구호는 시대착오적이다.

총선을 통해 가까운 과거를 선명하게 되살려 되뇔 기회를 자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의회민주주의가 가지는 최대 장점이다. 따라서 지난 4년간의 정치권 주체들과 관련된 일들을 꼼꼼히 기억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총선 정국에서 이루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선거 풍토에는 이를 방해하는 각종 장치들이 많다. 지역주의는 물론이거니와, 선거 때면 등장하는 기존 여권 지지층, 또는 전통적 야당 투표자들 등의 범주는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연일 쏟아지는 언론의 여론 조사 및 판세 분석은 마치 흥미로운 스포츠 중계처럼, ‘선수’들끼리 ‘지금’ 벌이는 ‘시합’만을 전할 뿐이다. 우리 선거의 또 하나의 단골 메뉴인 “참신함”이라는 담론도 과거가 가지는 중요성의 깊이를 메워버린다.

이런 장치들 탓인지, 총선이 가까운 과거에 대한 평가와 심판의 장이라는 점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더 망각되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년 전에 벌어진 세월호 사건이 이번 선거에서 공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마도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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