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칼럼] 길들여지는 대학, 이대로 좋은가

입력
2016.07.03 10:06

한국 교육이 갈수록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대학은 교육부가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댈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고 몸살을 앓는다. 최근에는 프라임(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문제로 다시 교육부로부터 강박을 당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7개 대학 학생회가 ‘대학을 기업의 하청업체로 만들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프라임 사업의 중단을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부가 대학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조금이니 구조조정이니 감사니 하는 것으로 대학의 자율을 옥죄어왔다. 연구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보조금 제도에 왜 시비를 걸겠는가. 문제는 그것이 관료들의 손에 의해 대학을 길들이는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규모에 관계없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국가보조금은 당근이자 족쇄다. 돈으로 대학 사회를 길들이려는 상황에서 정부와 대학은 비대칭적인 ‘갑을관계’로 구조화되었다. 대학을 조종하는 보조금 미끼,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교육부는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대학 구조조정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갑’의 위치에서 대학의 자율권을 짓밟는 수단이 되었다. 이 때도 구조조정은 당근과 채찍으로 나타났고, 검은 유착과 교육관피아는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구조조정을 교육부가 주도할 명분이 있을까. 대학 설립과 증과ㆍ증원이 유행처럼 되고 있을 때 인구성장율은 감소 징후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를 예측하지 못하고 증원ㆍ증과를 도모했던 것은 정치권의 무책임한 선심정책과 그걸 알고도 동조했던 교육 관료의 무능과 직무유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구조조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할 교육관료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그들이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쥔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교육관피아들은 대학 구조의 감축 책임이 수요 예측을 잘못한 자신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대학에 뒤집어 씌워 구조조정이라는 멍에를 안겼다. 그러다 보니 교육관피아들은 증설 증원 때 재미를 보고, 구조조정 때도 구원투수처럼 행세했다. 이 무렵 교육관피아들이 대학 총장으로 다수 ‘전출’했던 것은, 울며 겨자 먹기로 관피아들을 수용,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 때문이다. 이러한 몇 번의 이상한 과정을 통해 대학의 자율성은 현저히 쪼그라들었다. 교육부와 그 관료들은, 고등교육의 앞날은 어찌되었건 내심 이런 환경을 즐기면서 대학을 그들의 수중에 거머쥐었다. 구조조정이라는 거대담론을 선점한 교육관피아들은, 자율에 맡겨야 할 대학의 ‘구조조정’도 자신들의 과거사를 덮어버리려는 듯 대학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대학은 교육부의 이 거대담론에 휘말린 채 제대로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고 맥없이 굴복하고 말았다.

대학 경영에 투명성이 담보되고 보조금 없이도 연구와 교수에 성과를 거두었다면, 대학의 자율성은 그런대로 확보되었을 것이다. 대학의 나태와 부패는 외부의 제재를 불러들였고, 대학 고유의 연구 영역에도 간섭을 받게 되었다. 연구의 평가분야에서도 대학은 자율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원전을 캐고 자료를 제대로 훑어야만 숙성될 수 있는 인문학에 논문 편수의 다과로 질을 대신하려는 시도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연구 평가도 대학과 학문의 속성에 따라 개혁의 틀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자율과 자유를 상실하게 되면 대학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대학이 교육관피아들의 ‘행패’에 대해 자율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적어도 부산대 정도의 저항과 응집력을 보여주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자율을 확보할 때에 대학은 그 자유에 기반하여 책임 있는 후대를 양성할 수 있고, 상상력과 연구성과도 사회에 제대로 제공할 수 있다. 자율성과 창의성을 상실한 대학은 자기 시대를 향해 예언자적인 사명도 감당할 수 없다. 이명박 시대, 저 부패를 보고서도 대학이 광야의 소리는커녕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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