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칼럼] 독재자가 이별하는 법

입력
2016.11.17 14:43

역사에 남는 독재자들이 모두 처음부터 사악했던 것은 아니나 갈수록 끔찍한 방식으로 폭정을 일삼다 결국 비참하고 외로운 끝을 맞게 되는 것은 비슷하다. 로마의 폭군 칼리굴라는 어린 시절 전쟁하는 아버지를 따라 다닐 때, 너무 귀여워서 마스코트처럼 병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죽은 후 가문에 피바람이 분 바람에 형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고 황제가 된다. 즉위한 지 첫 6개월은 상당히 좋은 정치를 베풀었지만 6개월 만에 심하게 병을 앓고는 (아마도 뇌염일 듯) 성격이 이상해져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패륜과 패악을 일삼다가 29세에 암살당하고 만다. 그의 조카 네로는 14세에 황제가 된 후, 첫 몇 년은 훌륭한 장군들 덕에 몇몇 전쟁에서 이기기도 했지만, 곧 잔인한 행동들을 일삼게 된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산채로 주물에 넣고 서서히 불을 때 죽인다든지, 기독교 신자들을 죽여 횃불의 재료로 만든다든지 하는 소문도 있다. 시적 영감을 위해 로마에 대화재를 일으켰다는 설도 있지만, 결국 왕권을 뺏기고 29세에 자살한다. 영국의 헨리 8세는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잔인한 일과 비윤리적인 일들을 거침없이 저질렀지만, 정략결혼과 전쟁승리 덕에 50세가 넘도록 왕좌를 지키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할 탐욕으로 살이 너무 쪄서 말년에는 기계로 몸을 옮겨야 할 정도였다. 당뇨와 통풍으로 짐작되는 여러 병과 종기의 합병증으로 끔찍한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앓다가 죽었다. 조선의 연산군도 폭정과 음란한 행동을 거듭하다 폐위되어 두 달 만에 역병으로 비참하게 죽었다고 기록된다.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한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키기 이전부터 암페타민, 코카인, 아편 등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한다. 장군들에게 몰살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후퇴하지 말라고 했던 것도,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연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복용했던 향정신성 약물 때문이라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무자비한 숙청과 공포정치로 살아 있을 때는 거의 신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행동했던 스탈린은 가족이 자살하거나 모두 사라져 버려 임종 직전에는 안가인 별장에서 오른쪽 반신이 마비된 상태에서 홀로 비참하게 죽는다. 쿠데타를 일으켜 1971년부터 1979년까지 대량학살을 하고 대부분의 지식인을 숙청하거나 망명하게 한 우간다의 이디 아민도 결국엔 국외로 추방되어 행방불명되고 만다.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2003년까지 장기집권을 했던 사담 후세인도 미군에 체포되어 2006년 사형장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지옥까지 갈 필요도 없이 죽기 전 벌을 받은 셈이다.

요즘 하야를 원하는 국민과 맞서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박 대통령은 그래도 위에 언급한 독재자들의 마지막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국민과 이별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대통령은 한때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며 성공한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코스프레를 했던 사람이 아닌가. 실제로는 최순실 혹은 그 일가의 누구인지 모를 사람과 몰래 결혼해서 이미 30년 이상 살아왔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셈이니, 특히 대통령을 좋아하던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 준 것 같다. 마치 불륜을 저지르거나 중혼을 한 사실을 안 배우자들과 비슷한 감정 상태를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촛불 집회에 나온 100만 명 중에는 원래 대통령을 싫어했거나, 민주주의가 걱정되어 나온 사람도 있지만, 그동안 모든 것이 사기이자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감 때문에 나온 이들도 많다.

하지만 배신감 때문에 헤어짐을 간절히 원하는 국민에게 대통령은 못 나간다고 버티고 있는 모양새다. 과거에 바른말을 하는 이들을 모두 허허벌판으로 내쫓거나 입을 막는 데 성공해서 대한민국이란 남편이 아주 오랫동안 눈먼 소경처럼 살아왔기 때문일까. 일단 시간을 벌면 건망증이 심한 대한민국이 이번에도 슬쩍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기 친 대통령이랑 이혼하고 싶어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러지 않아도 자꾸 어려워 지고 있는데, 몇 달 더 지나면 살림이 모두 거덜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끊임없는 거짓말로 재산을 오랫동안 빼돌렸던 바람난 배우자가 곳간 열쇠를 쥐고 안 나가겠다고 버티는 것과 무에 다른가.

거짓말과 무능을 진작부터 알고도 눈감아 주고, 사람만 바꾸어 또 비슷한 사기 칠 것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어쩌면 진짜 문제일 수도 있겠다. 그동안 스리슬쩍 빼돌린 돈을 나누어 나름대로 호의호식했으니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시간을 끌수록 묻혀 있던 의혹에 대한 증인들과 사건들이 속속 더 다양하게 등장할 텐데 그 추한 마지막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지. 터무니없는 무력을 사용해 같이 모두 죽어 버리자고 덤비지 않는 한, 버틸수록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이 재기할 가능성은 점점 떨어진다. 동정유발자도, 자해공갈단도, 이제는 정말 신물이 난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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