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장미꽃을 받아든 여자

입력
2017.03.07 17:48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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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 8일, 1만5,000명이 넘는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하루 12시간에서 18시간의 노동을 견디다 못한 여성 노동자들은 빵과 장미를 달라 외쳤다. 빵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10여 년이 흘렀다. 1908년의 그날을 기리는 세계여성의 날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기록하고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 ‘참고문헌 없음’은 텀블벅 후원 펀딩을 시작한지 닷새 만에 5,000만원을 모았다. 본격적인 고발과 폭로가 시작된 지 넉 달 남짓 지난 현재 어느 시인은 구속되었고 어느 시인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어느 소설가는 은둔했고 어느 시인은 사과문을 올렸고 어느 소설가는 결백을 주장했다. 또 어느 시인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나날이 떨어지는 출산율 회복을 위해,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우스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1908년 여성노동자들은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기 때문이지”라는 노랫말이었다. 세월이 이만큼이나 흘렀어도 여태 “아, 진짜 요즘은 남자가 더 힘들어. 너희들은 생리휴가도 있고 여성전용주차장도 있잖아”라는 비아냥 일색이다. 아직 장미는 여성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꽃집 장미꽃 한 송이로 대충 달랠 생각은 말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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