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한 시절이 사라지고 그 다음 시절이

입력
2017.03.09 18:04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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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였을 것이다. 여행 중에 나는 저녁 강변에서 서너 명의 한국인 여인들을 만났다. 50대 초반쯤으로 보였고 우리는 함께 카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나는 이들이니 인사를 나누어야 했고 그들은 “우리 큰딸은 이번에 임용이 됐어요. 영어교사예요.” 그러거나 “둘째 군대 보내고 나니 쓸쓸하기도 하고... 그래서 여행 왔어요.” 그렇게 소개를 했다. 결혼 전이었던 나로서는 그런 방식의 인사말이 낯설어 듣기만 했다. 그 중 작은 키에 얌전한 얼굴을 한 중년의 여인 한 명이 “전 마포 살아요.” 그렇게만 말하기에 나는 별 뜻 없이 되물었다. “결혼은 하셨어요?” 그러자 여인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어머, 제가 안 한 것처럼 보여요? 저 쉰이 넘었어요!” 그러니까 내 말을 조금 오해한 모양이었다. 쉰 살이 넘은 여자가 결혼을 안 할 리는 없으니 내가 여인을 아주 어린 나이로 본 것이라 짐작하고 마냥 기뻐한 것이었다. 산통을 깰 필요는 없어서 나는 그냥 웃었고 여인은 커피를 샀다. 그때 나는, 여인들이 산 세상과 내가 산 세상이 어쩌면 아주 다른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 곳에 살아도 다른 꿈을 꾸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와 같은 뉴스를 보면서 오늘 아침을 보낼 것이다. 77%의 국민들이 탄핵 인용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그때 그 여인들이 무얼 바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나는 사람들을 딱 두 부류, 촛불집회에 나갈 사람들인지 태극기집회에 나갈 사람들인지 그것으로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사실 삶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설명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제 탄핵선고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어쨌거나 한 시절이 사라지고 다른 시절이 시작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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