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의 프레임] 가급적 멀리 떠나라

입력
2017.09.28 14:38

사상 최장 연휴가 왔다. 일요일은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된다는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이번 연휴도 오늘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전 국민이 이렇게 오랜 시간 합법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경험을 언제 다시 할 것인가? (이 기간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분들께는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 같은 황금연휴가 다시 오는 것은 2044년 10월! 그러니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인생 최후의 전국민적 휴가이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도 향후 27년 간은 결코 다시 누릴 수 없는 호사다. 그러니 설렘은 당연한 감정이다. 한편, 방학이 끝날 때마다 더 하지 못한 공부와 더 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늘 가져왔기에, 이번 황금연휴를 보내고 나서 더 즐겁게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허탈감이 범국민적으로 번질까 봐 약간의 불안감도 없지 않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동시에 휴가를 즐김으로써 생기는 심리적 회복을 ‘집단적 회복(collective restoration)’이라고 한다. 개인의 휴가는 즐겁긴 해도 마음 한구석에 늘 불편한 감정이 잠복한다. 나만 노는 것 같은 불안감, ‘이렇게 놀아도 되나?’ 하는 물음으로 대변되는 한국적 일 중독, 아니 일 도착증, 그리고 나 때문에 늘어난 업무량을 감당해야 할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개인의 휴가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연구에 따르면, 휴가의 효과는 모두가 동시에 휴가를 떠날 때 극대화된다. 휴가의 회복 효과는 전염성이 있어서, 한 사람의 휴가로 나머지 사람도 긍정적으로 전염시킬 수 있다. 그러나 휴가를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지켜야 하는 나머지 사람들의 피로와 소진이 휴가를 다녀온 사람에게 역으로 전염될 수도 있다. 모두가 같은 기간에 휴가를 갖는다면, 그런 염려가 사라지고, 각자가 여행과 휴가에서 얻어 온 에너지, 추억, 이야깃거리, 영감 등이 서로를 물들이며 집단적 회복이 일어난다. 동시다발적 휴가의 시너지 효과다.

이런 집단적 회복을 국가적으로 시도하는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연 5주의 휴가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여름에는 4주 연속으로 휴가를 가질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여름은 모두가 노는 시간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다. 놀랍게도 이 기간 동안 스웨덴에서는 항우울제 처방이 연중 최저점을 찍는다. 휴가를 동시에 즐기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 그 공동체의 행복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아짐을 보여준다.

일 중독에 빠진 한국인들이 공동으로 황금휴가를 보내며 집단적 회복을 누릴 수 있는 최적기를 앞두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이번 연휴는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전국민적 휴가이고 합법적으로 용인되는 나태이니만큼, 충분히 놀겠다는 결심을 하시라. 노는 데 있어서의 자기한계를 깨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놀만큼 놀아봤다는 사람이 부러운 적이 있다면 이번 연휴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

두 번째, 계획을 잘 세우시라. 여행은 행복을 위한 좋은 선택이지만 모든 여행이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은 여행, 여행지에서 무엇을 먹고 어떻게 이동하고 무엇을 구경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여행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잘 짜인 여행, 현지인 친구가 도와주는 여행, 유능하고 친절한 여행 가이드가 있는 여행은 여행의 행복을 크게 늘려준다. 휴가도 마찬가지다. 황금연휴를 만끽하고 싶다면 시간을 내어 계획을 짜야 한다. 사전 계획이 중요한 이유는 여행 과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만 있는 게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여행의 최대 즐거움은 여행 과정이 아니라,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겪는 상상과 예감의 즐거움에 있다고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연휴 기간 내내 무엇을 할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해보길 권한다.

세 번째, 이번 연휴에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시도하시라. 이번 휴가만의 하이라이트를 만드는 게 좋다. 새로운 게 없는 그저 그런 하루가 열흘씩이나 반복되는 휴가는, 개성 넘치는 타인의 휴가와 비교돼, 오히려 고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집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떠나라. 해외여행자의 수가 급증하는 이유는 국내 관광지를 무시하기 때문도 아니요, 사치는 더더욱 아니다. 여행과 행복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여행지가 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행복감이 커진다고 한다.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국내 여행보다는 해외여행에서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이번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분들은 잘 선택하셨다. 여러 사정상 국내에 있는 분들은 가급적 동네를 떠나는 시간을 반나절이라도 꼭 만드시라. 동네 뒷산보다는 이웃 마을 산으로, 늘 가던 동네 식당보다는 일부러 교외로, 늘 가던 교외보다는 다른 지방에 가보시라. 도로 사정 때문에 ‘방콕’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이번만은 접으시라. 2044년까지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니까.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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