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칼럼] 링컨을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17.10.22 14:40
30면

닮으려 하면서도 끝내 닮지 못해

설득과 관용, 인내가 그의 위대함

이와 대칭점에 서 있는 적폐청산

문재인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탄핵 촛불시위를 촉발시켜 급히 치러진 대선을 문재인에 헌납했다. MB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임기 말에 역대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 당시 한나라당은 누구를 내세워도 집권이 확실했다. 그 MB와 문재인이 일등공신을 적폐로 몰았고, 몰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한때 스스로 ‘폐족’이라 불렀으나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으로 부활했다. 그 여파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으니 노무현 역시 문 대통령 당선이 공신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며, 스스로 그를 닮았다고 여긴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실패는 그렇게 닮고자 했던 링컨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간 때문이다.

링컨은 주 하원의원과 연방 하원의원을 한번 밖에 못한 비교적 별 볼일 없는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전국적 인물로 부상한 것은 당시 노예제 폐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유명한 ‘링컨-더글러스 논쟁’ 덕분이었다. 링컨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 도전할 때만 해도 그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초라한 경력, 무학, 가난, 비천한 가문,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행색 등은 한 마디로 일리노이 촌뜨기 정치인의 무모한 도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후보 경선 승리는 한 마디로 기적이었다. 여기까지는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당시 상대당의 분열로 대통령이 된 링컨의 위대함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링컨은 그를 무시하던 쟁쟁한 경쟁자들을 집요하게 설득해 모두 내각에 끌어들였다. 슈어드 국무장관, 체이스 재무장관, 베이츠 법무장관 등이 그들이다. 압권은 그를 멸시하고 조롱한 정적 스탠턴을 전쟁장관으로 영입한 것이었다. 주위의 반대가 심하자,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원수는 죽여서 없애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없애야지요. 이제 그 사람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나는 적이 없어져서 좋고, 그처럼 능력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좋고 일석이조가 아닙니까?” 실제로 남북전쟁 초기 북군은 남군에 형편없이 밀렸다. 그러다 스탠턴의 눈부신 활약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링컨의 유품 중에 편지가 많고, 그 편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남북전쟁 중 북군의 미드 장군이 링컨의 명령을 어기고 결정적 실수를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링컨이 미드 장군을 심하게 질책하는 내용의 이 편지는 보내지 않은 편지였다. 링컨의 버릇이다. 누가 미우면 비난 편지를 쓰고는 태워버린다. 증오를 삭이는 방법이다. 미드 장군에게 보낸 편지는 미처 태우지 못한 것이었다.

초기 링컨의 내각은 한 마디로 난장판, 좋게 말하면 백화제방이었다. 모두가 쟁쟁한 인물인국무위원들이 사사건건 대통령과 대립했다. 링컨은 거의 매일 밤 예고 없이 그들의 집을 방문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설득했고, 끝내 설득이 안 되면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흐르자 모든 경쟁자들이 링컨을 존경하고 진정한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훗날 이중 베이츠 법무장관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가 낙방했다. 링컨은 그마저도 대법원장에 지명했다.

링컨의 내각을 역사는 “경쟁자팀(Team of Rival)”이라 부른다. 그리고 진짜 링컨을 닮고자 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적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끌어들이고, 공화당 출신 인사를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등 화합과 능력의 내각을 꾸려 결국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위대함은 남북 대화합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링컨은 내전 이후 어떤 보복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남군의 총사령관 리 장군은 천수를 누렸다.

이른바 ‘87체제’라는 제6공화국에서 우리는 6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 이는 전무하다. 매 정권마다 전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이 되풀이 되었다. 적폐청산은 당위론적 권위를 지닌 말이지만 어떤 이름의 적폐청산도 성공한 적이 없다. 링컨으로부터 진정한 적폐청산은 인내와 관용임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정두언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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