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의 식물과 인간] 참나무

입력
2018.05.0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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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계절을 가장 빛내는 나무가 참나무다. 이맘때의 산은 짙은 녹색의 침엽수 사이로 활엽수의 연두색이 일렁거려 단풍 못잖은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다. 그 대부분이 참나무다. 조선시대에 도토리 나무를 부지런히 심고 가꾼 덕에 지금은 가장 흔한 나무가 됐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그 열매인 도토리가 ‘꿀밤’이라 불릴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신임 사또가 부임하면 맨 먼저 도토리나무를 심었고, 나라에서 도토리를 수집ㆍ저장했다. 꽃이 피는 5월에 가뭄이 들면 자연스레 수분(受粉)이 잘 돼 더 많은 열매가 열려 굶주림을 달래주었다.

민족의 상징인 소나무 못잖게 흔하지만, 식물도감에는 ‘참나무’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참나뭇과에 속하는 여섯 종(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모두가 다른 나무보다 재질이 단단하고, 예로부터 쓰임새가 유용해 ‘참나무’로 총칭됐다. 6종 참나무 이름에는 다 사연이 있다. 나무껍질에 세로로 깊은 골이 패인 골참나무가 굴참나무가 되었고, 그 껍질로 지붕은 이은 게 굴피집이었다. 나뭇꾼의 짚신이 헤어지면 그 잎을 짚신바닥에 깔아 신었다고 신갈나무, 떡을 쌀 만큼 잎이 넓고 그 잎으로 싸 놓으면 떡이 오래 간다고 떡갈나무, 열매가 작은 졸병참나무란 뜻의 졸참나무, 늦가을까지 잎이 달렸다고 가을 참나무, 즉 갈참나무가 됐다고 한다.

도토리의 쓰임새는 지금도 다양하다. 식용으로 쓸 때는 떫은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을 많이 제거한다. 바싹 말린 도토리를 절구로 빻아 껍질을 제거한 후 맷돌로 갈아 며칠을 물에 담가 떫은 맛을 우려낸 후 앙금을 걷어 말려 가루를 얻는다. 그 가루로 죽을 쑤면 도토리죽, 떡을 만들면 도토리떡, 밀가루와 섞어 국수로 뽑으면 도토리국수, 묵을 쑤면 흔히 보는 도토리묵이 된다. 수제비나 부침개로 먹을 수도 있다. 항균 작용이 강해 간장 항아리에 넣어 잡균 번식을 막기도 했다.

참나무의 쓰임새 가운데 뺄 수 없는 게 버섯과 참숯이다. 능이나 표고 같은 자연산 버섯이 모두 참나무 버섯이다. 지금도 표고버섯 재배에 굴참나무 줄기가 널리 쓰이듯, 나무 자체의 항균 성분이 버섯 종균 외의 잡균에는 일종의 제초제와 같은 작용을 한다. 나무 재질이 단단해 고급가구 재료로 쓰이고, 참숯이 숯의 으뜸으로 꼽히는 것도 탄소함량이 높아 오랫동안 같은 온도로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참숯은 공기정화나 탈취제로도 널리 쓰인다.

한방에서는 탄닌의 혈관과 장(腸) 수축 작용을 살려 설사나 치질, 탈항(脫肛), 지혈, 거담, 진통에 도토리를 쓴다. 예로부터 상수리나무는 술의 향기와 맛을 살리는 ‘모락톤’ 함량이 높아 술통을 만드는 데 썼고, ‘오크(oak) 통’에서 보듯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다.

도토리가 들어간 속담도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받는 사람을 가리켜 ‘개밥에 도토리’라 하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것을 ‘도토리 키 재기’라고 한다.

이 아낌없이 주는 숲의 보배가 참나무시들음병, 참나무흰가루병, 참나무류 둥근무늬병(원성병), 고리내움가지마름병 등으로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정확한 대응책은 없고, 그저 베어내 소각하거나 낙엽까지 태워 확산을 막는 게 고작이다.

정구영 식물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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