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정적(靜寂)] 임무(任務)

입력
2018.10.30 04:40
수정
2018.11.26 15:10
29면

나에게 하루라는 매정한 시간을 허락한 운명의 여신이 있다. 바로 내가 오늘이 가기 전에 반드시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야할 일이다. 나는 그 일을 오랜 숙고를 통해 발굴해 냈고, 그것을 완수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창적이다. 내가 그 일을 완수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그것에 온전히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 일은 매 순간 나의 최선을 유발한다. 그 일의 이름은 ‘임무(任務)’다.

서울대학교는 2013~2015년 서울시 구로구에 있는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수형자를 위한 인문학 과정을 자체예산으로 진행하였다. 서울대학교가 한국사회를 위해 기꺼이 시도한 몇 가지 중에 하나다. 40여명으로 구성된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매주 금요일 서울남부교도소를 찾아가 문학, 역사, 철학, 사회과학, 과학 그리고 예술에 관련된 주제를 3년 동안 60회를 걸쳐 진행하였다.

나는 그 당시 이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주임교수를 자처하였다. 가능하면 매주 참여하여 수형자들과 눈을 맞추면서 안부를 묻고 강의할 교수를 소개하였다. 내가 거주하는 시골에서 남부교도소까지는 2시간이상 운전해야 하는 거리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나의 운행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수형자들의 삶을 역지사지하여 상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곳은 나에게 예루살렘성전보다 거룩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고대 이집트어인 ‘마아트(MAAT)’라고 정했다. 마아트는 3000년 이상 지속된 고대 이집트 문명을 지탱한 원칙이자 작동원리였기 때문이다. 마아트는 공동체로서 국가가 반드시 처리해야할 임무이며, 동시에 개인이 자신의 짧은 인생을 통해 추구해야할 자신 만의 거룩한 임무다.

마아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시간관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시간관을 가졌다. 그들은 시간을 선형적이면서도 동시에 순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첫 번째 ‘선형적 시간관’을 고대 이집트어로 ‘데트’라고 불렀다. 우주가 창조된 그 시간부터 우주가 다시 혼돈으로 파괴될 때까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영원히 동일하다’라는 신념을 표현한 단어다.

하늘은 땅위에 있고,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며, 태양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은 태어나 자라고, 그리고 죽는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은 영원한 동일성을 따를 뿐이다. 그들은 두 번째 시간관을 고대 이집트어로 ‘네하흐’라고 불렀다. ‘네하흐’는 ‘영원히 순환하다’라는 의미로 태양은 똑같은 자리를 매일, 매달, 매 계절 순환하고, 동식물도 삶과 죽음의 순환을 반복한다. 이집트인들의 시간관은 연극과 같다. 연극대본은 ‘영원히 동일한’ ‘데트’이며, 연극배우나 그 밖의 장치에 따라 달라지는 그 순간의 공연이 ‘네하흐’다. 시간은 이 순간에 일어나고 동시에 지속되고 있다. 시간은 순환적이며 동시에 선형적이고, 완료되지 않는 상태이기도 하고 완료된 상태이기도 하다.

마아트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고정되고 불변하고 영원한 시간인 ‘데트’가 매 순간에 발현되는 원칙이자 틀이다. 마아트는 우주창조 신화에서 우주의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원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서’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마아트가 등장하기 전, 우주는 혼돈상태에 있었다. 마아트는 태양을 아침마다 뜨게 하고, 밤에는 별을 내고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하게 만들고 인간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현실의 단단한 기반이다. 마아트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삼라만상 그 자체다. 바위나 꽃도 인간이 상상하기는 도덕이나 윤리를 초월하는 자연 그 자체가 바로 마아트다. 마아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바로 그것이다.

마아트는 기원전 2600년에 건축되어 아직도 건재한 피라미드 건축의 핵심이다. 최초의 피라미드는 그 당시 파라오 쿠푸의 명령을 받아 총리대신 임호텝(Imhotep)이 건축하였다. 임호텝은 기하학자로 동일한 크기로 자른 2.5톤의 돌덩이 250만개를 쌓아올려 147m 높이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임호텝은 지반이 안정하지 않는 터전에서 250만개의 돌들을 유기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쌓기 위해, 그 무게중심을 찾아야 했다. 그 무게 중심이 바로 마아트다. 마아트는 ‘그 순간에 적당하며 영원히 온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마아’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이다. 임호텝은 피라미드 공사를 시작하기 전, 그 중심을 마아트의 표식인 타조깃털을 가지런히 놓은 의례를 행했다. 마아트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기 힘들지만, 이 단어를 풀어서 설명한다면 “만물이 존재해야만 하는 방식”이다. 인간존재의 핵심은 자신이 가진 그 어떤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최선을 다해 발현하는 일이다.

나는 매주 교도소로 들어가면서 ‘방문자’라는 팻말을 착용하였다. 나는 수인번호가 새겨진 옷을 입은 수형자들을 마주하면서 항상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당신은 일주일전 자신과 다릅니까?” “당신이 기꺼이 짊어지고(壬) 온 힘을 다해 애써야할(敄) 당신만의 임무(任務)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그 임무를 찾으십시오!” 사실 이 질문은 내가 남부교도소로 들어갈 때, 내 자신을 회초리로 내려치며 나태한 내 마음의 호수에 던지는 돌멩이였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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