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은 쇄국을 택했지만, 남중국해는 동서 교류 중심지였다

입력
2018.11.02 04:40
수정
2018.11.02 09: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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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브룩 ‘셀던의 중국 지도’

17세기 영국 법률가 존 셀던이 입수해 보존해둔 중국 지도. 지도 중앙에다 거대한 땅을 그려두는 기존 지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지도다. 너머북스 제공
17세기 영국 법률가 존 셀던이 입수해 보존해둔 중국 지도. 지도 중앙에다 거대한 땅을 그려두는 기존 지도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지도다. 너머북스 제공
셀던의 중국 지도를 오늘날 지도와 비교해둔 것. 그 시절 기술수준에 비해 의외로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항로 중심의 지도라 남중국해 중간의 바다 부분은 빠져 있다. 너머북스 제공
셀던의 중국 지도를 오늘날 지도와 비교해둔 것. 그 시절 기술수준에 비해 의외로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항로 중심의 지도라 남중국해 중간의 바다 부분은 빠져 있다. 너머북스 제공

이른바 ‘신청사(新淸史)’라 불리는 흐름이 ‘한화(漢化)된 만주족 정권’이 아니라 ‘대륙 내부 정복에 치중한 다민족 제국’으로 청나라를 재정의함으로써 중국의 ‘한족 중심주의’를 깨뜨린다면, 17세기 명나라 시기 남중국해의 광범위한 국제 교역망을 복원해내는 티모시 브룩의 연구는 남중국해 분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버드 중국사 시리즈’의 책임편집을 맡았던 중국 전문가 브룩이 쓴 ‘셀던의 중국지도’의 흥미 포인트다.

먼저 17세기 영국 법률가 존 셀던(1584~1654). 바다의 역사에 관심 있다면 들어본 이름일 게다. ‘자유’라는 명목은 탐욕을 고귀함으로 포장할 때 자주 쓰인다. 당시 북해를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가 ‘자유로운 바다’ ‘열린 바다’를 주장한 이유다. 바다에서의 자유란, 내 마음대로 휘저을 자유다. 이에 맞선 셀던은 ‘닫힌 바다(Mare Clausum)’ 원칙을 주장했다. 오늘날 통용되는 12해리 영해 기준, 무해통항의 원칙 등은 셀던의 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익을 위해 영국 편에 섰다지만, 셀던은 영국 왕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국왕에 반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 동양적인 것에 탐닉했는데, 그 때문에 방대한 동양 수집품을 남겼다.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 지도다. 원래 제작자나 소장자, 입수 경위는 흐릿하다. 사실 셀던도 그에 대해선 잘 몰랐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일단 수집해두면, 후대의 누군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잘 써먹을 것이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셀던이 죽은 뒤, 지도는 영국 옥스퍼드대 박물관에 기증됐다.

다음은 중국 지도. 셀던이 의식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지만, 그가 남긴 지도는 특이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전근대 지도를 보면 하나같이 엉터리다. 측량술의 한계 같은 기술적 문제도 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전근대 지도의 핵심은 ‘사실의 묘사’가 아니라 ‘관념의 표현’이라서다. 중국 땅에 들어선 왕조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또 이 세상은 천원지방(天圓地方), 곧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생각했다. 고로 중국 지도를 제작한다는 건 거대한 네모꼴의 중국 땅을 지도 한가운데에다 우람하게 그려 넣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셀던 지도는 사실적이다. 현대 지도와 겹쳐놔 봐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다른 여러 자료와 기록들을 비교 검토한 끝에 저자는 셀던 지도가 ‘시속 4노트의 속도로 달리는 배’의 입장에서 그려졌다는 점을 밝혀낸다. 시속 4노트는 당시 일반적인 상선들의 속도로 추정된다.

셀던의 중국지도

티모시 브룩 지음ㆍ조영헌 옮김

너머북스 발행ㆍ420쪽ㆍ2만8,000원

다시 말해 셀던 지도의 주인공은 중국 땅이 아니라 남중국해, 바다 그 자체다. 그러니까 항로를 먼저 그리고, 그 다음 바다 공간을 확보하고, 그 다음 주변 해안선을 그리고, 그 다음에 가서야 땅 그림을 채워 넣었다. 세상의 중심 중국 땅은 지도 저 위쪽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 덕에 정확성 면에서는 17세기 중국은 물론, 동시대 유럽의 그 어떤 지도보다도 더 뛰어났다. 이러니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기도 하지만, 책은 일단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맥 빠진 통사 대신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노련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이 책 또한 셀던 지도의 비밀을 추적해 들어가는 흥미진진한 추리물처럼 쓰여 있다. 그 추리 과정에서 저자는 남중국해 일대, 그러니까 중국 남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이 지역에 진출한 네덜란드, 영국까지 개입한 복잡한 해상 무역 관계를 세세하게 드러낸다.

이런 작업을 통해 브룩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15세기 ‘정화의 원정’ 이후 명나라가 해안을 폐쇄한 대륙 국가로만 존재했다는 기존 통념을 깨부수는 것이다. 명나라 자체는 해안을 폐쇄하고 교류를 끊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남중국해는 그 이후 오랫동안 여전히 동서양이 오가는 교류의 중심지였다.

브룩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이 지도는 철저한 상업적인 항해도로, 제국의 의도나 영유권 주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의 지도 제작자는 명조를 포함한 정치적 국가에 관심이 없었다. 정반대로 명조 역시 바다에 관심이 없었다. 명 조정은 영국이나 네덜란드와 달리 상업적 세력과 결탁해 이익을 획득할 수 있다는 유인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 대신 조정에 순복하는 자들로 구성된 단일한 세계 질서의 지배자로 자처하는 것은 선호했다.” 쉽게 말해, 행여나 셀던 지도를 핑계 삼아 남중국해에 대한 배타적 권한을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속되게 말해, 선방을 날리는 셈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두 가지 점이 흥미롭다. 하나는 정성공(1624~1662) 스토리다. 조선 후기엔 ‘정(鄭)도령’ 혹은 ‘해남진인(海南眞人)’이 나타나 세상을 뒤집을 것이란 얘기가 광범위하게 퍼졌다. 정도령, 혹은 해남진인이 정성공이란 얘기가 많았는데, 그럴 만하게도 정성공은 남중국해 무역을 장악했던 인물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방대한 교역망에 조선의 흔적은 없다는 점이다. 이건 무얼 의미할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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