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안봉선(安奉線)

입력
2018.11.07 10:25
수정
2018.11.21 11:14
29면

1911년 11월 압록강철교가 개통되자 경의선은 안봉선(안동-봉천, 304㎞)을 거쳐 남만주철도(대련-장춘, 701㎞)나 경봉선(북경-봉천, 842㎞)과 접속하여 대륙 각지와 연결되었다. 안봉선은 한국철도와 만주철도를 잇는 중추기 때문에 동북아철도공동체를 꿈꾸는 정부는 그 내력과 함의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2~1905.9) 때 본계호탄광(本溪湖炭鑛)을 무단점거하고, 채굴한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군용으로 안봉선(협궤궤간 762mm, 궤조중량 2.5㎏)을 건설했다. 그리고 ‘일러강화조약’을 맺어 남만주철도와 기타 특권을 양수했다. 일본과 러시아는 만주에서 여전히 철도를 매개로 치열하게 세력을 다퉜다. 특히 일본은 경의선-압록강철교-안봉선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대륙을 공략하는 첩경이자 러시아 동청철도(만주리-수분하, 1,480㎞)에 대항하는 지렛대라 여겼다.

일본군부의 대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1905년 8월 ‘만주경영개론’을 상주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봉천 이북에서 저지하기 위해서는 경편철도인 안봉선을 표준궤로 개축하여 평소부터 병력병참 수송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 외무대신 고무라 쥬타로(小村壽太郞)와 중국 직예총독 원세개(袁世凱)는 1905년 12월 ‘동삼성정약(東三省正約)’을 맺어, 러시아의 기존권리를 일본이 계승하고 안봉선을 일반용으로 개축하는데 합의했다.

일본정부는 1909년 3월 ‘한국병합에 관한 건’을 의결하여, 한국철도를 제국철도원에 편입하고 남만주철도와 긴밀히 연계시켜 통일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이어 봉천주재 일본 총영사 고이께(小池)와 중국 동삼성총독 석량(錫良)은 1909년 8월 ‘안봉철도에 관한 각서’에서 궤간을 경봉선(표준궤)과 같게 개수할 것에 동의했다. 일본 토건회사들은 1909년 10월부터 1911년 10월까지 남만주철도주식회사로부터 안봉선개축을 수주하고, 한국인을 비롯해 연인원 1,243만 5,000명을 동원하여 공사를 추진했다. 이에 호응하여 압록강철교를 가설한 조선총독부는 별도로 연인원 51만 명을 사역했다.

1911년 11월 일중이 ‘국경열차 직통운행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자 통관절차가 간소해지고, 서울에서 출발한 급행열차는 장춘까지 직통으로 달렸다. 일본은 유사시에 대비해 평상시에도 경부선-경의선-안봉선이 견실한 수송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일본은 중국을 압박해 1914년 5월부터 한중국경을 통과하는 철도화물에 대해 수출입세 3분의 1을 감면하고, 일본철도-한국철도-안봉선을 경유하는 면제품 한국미 맥주 도자기 등 12품목에 대해 운임을 특별히 30% 할인하도록 조처했다. 이로써 한반도종단철도에 화물이 집중하고 일본제품의 수출이 급속히 증대했다.

안봉선은 일본의 경제블록과 지배세력을 확장하는데 지대하게 공헌했다. 특히 병력병참수송에서 탁월했다. 일본은 1930년대 말부터 전쟁을 아시아태평양으로 확대하면서 안봉선-압록강철교-경의선-경부선을 복선으로 개량했다. 전쟁 막바지에 연합군의 공격으로 동중국해와 황해 항로가 부실해지자 이 노선은 유라시아대륙과 일본열도의 최고 이음새 역할을 했다. 소련은 일본의 패망을 간파하고 기습으로 만주를 점령한 후 철도를 통한 재침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안봉선 복선을 걷어다 시베리아철도 등에 전용했다.

최근 중국은 단동(안동)-심양(봉천) 고속철도를 새로 건설하고(2010.3~2015.9, 208㎞), 시속 250㎞ 고속열차를 1일 38회 운행한다. 이와 접속하는 북경-심양 고속철도(650㎞)도 곧 완공되는데, 시속 350㎞ 고속열차가 투입되면 북경-단동 소요시간은 3시간 이내로 줄어든다. 그럼에도 1일 1편인 평양-북경 국제열차는 여전히 1일 5회 운행하는 재래 안봉선을 이용한다. 경의선이 그 꼴이기 때문이다.

남북이 경의선을 연결하면 고속철도로 신축하는가, 아니면 재래철도를 개량하는가? 복선인가, 단선인가? 연결된 경의선은 안봉선의 고속철도와 재래철도 중 어느 것과 접속하는가? 객차와 화차는 같은 노선을 달리는가? 중국과는 충분히 협의하고 있는가? 국민은 알고 싶은 게 많은데 정부는 오직 연결에만 급급한 인상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