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 칼럼] ‘도덕적 대국’이라는 환상 또는 허구

입력
2018.11.20 04:40
수정
2018.11.20 10:44
29면

지난 10월 초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우리 외교부의 5ㆍ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검토 발언을 두고 한국은 미국 측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권국가 사이에서 승인이란 표현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잠시 일었지만 이내 묻혔다.

그런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동일 사안에 대해 승인이란 표현을 썼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적어도 트럼프의 경우처럼 살짝 논란이 됐다가 슬쩍 지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 중국 감정이 가뜩이나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우리의 주권을 낮잡아보는 발언을 했다면, 우리 국민의 반응은 반중 감정을 넘어 ‘혐중(嫌中)’ 수준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G2로 묶이는 대국이지만 미국과 중국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이렇듯 사뭇 다르다.

이는, 중국은 덩치만 컸지 대국답지 못하다는 반응으로 응축되어 나타나곤 한다. 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해 중국이 취한 조치라든지 남북 간, 북미 간 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 뭔가 딴죽을 거는 듯한 중국의 행보도 같은 반응을 야기한다. 대국답지 않게 속 좁고 이기적으로 군다는 것이다. 십분 동의된다. 크게 이슈가 되진 않았지만, 며칠 전 모 대학의 동아리 행사에 설치된 ‘티베트와 인도’라는 부스 이름에 대해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와 해당 대학에 문제를 제기한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큰 나라가 남의 나라 대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연 행사에 정부 차원서 대응함은 분명 덩치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반응의 저변에는 대국은 도덕적으로도 통이 커야 비로소 대국답다는 전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대국은 언제부터 단지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큰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을까? 또한 인류 역사에 과연 그러한 ‘도덕적 대국’이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국가는 도덕 실현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익 실현을 위한 존재였기에 하는 말이다. 나라가 크든 작든 간에 도덕 국가, 곧 도덕이 모든 국가행위의 가장 기본이 되고 존재 이유였던 국가는 논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도 있을 수 없다.

물론 국가가 표방하는 이념이나 가치 등을 보면 여태껏 있어온 절대 다수의 국가는 참으로 도덕적이다. 그러나 이는, 도덕의 실천이 국가의 존속과 번영에 부합될 때의 얘기다. 그것이 국가 이익에 반하거나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땐 얘기가 사뭇 달라진다. 특히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국의 이익 실현이 국제 외교에선 최우선이기에,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타국에 도움을 줌으로써 대국답다는 칭송을 듣고자 하는 나라는 지금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나라로부터는 부도덕하다는 평판을 듣더라도 내 나라에 득이 된다면 기꺼이 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국이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다. 대국도 국가인 한, 기본적이고도 우선적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영토가 넓고 자원이 많으며 군사력과 경제력 등이 크고 세기에 대국인 것이지, 도덕적으로 훌륭하기에 대국이 된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이처럼 대국과 도덕적 역량은 무관하다. 미국이 중국에 비해 선진국인 까닭은 민주주의가 중국보다 많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달했다고 하여 다 대국이 됨은 아니다. 시민 일반의 인문적 소양이 중국보다는 미국이 높은 것도 미국이 중국보다 선진국인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문적 소양이 높다고 하여 다 대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성숙한 민주주의나 높은 인문적 소양 등은 선진국의 조건이지 대국의 조건은 아니었음이다. 대국이 되는 데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이 핵심이지, 도덕적 역량은 그저 부차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 미국이나 중국이 대국이라고 해서 그들이 도덕적으로도 대인처럼 굴 것을 기대하는 건 오산이다. 사람 차원에서 대인과 그렇지 않은 이의 구분이 가능하고 또 의미 있다고 하여 국가 차원에서도 그런 구분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필자의 “대인 같은 대국은 없다”, 2017년 1월 17일 자 칼럼 참고) 게다가 미국이나 중국이 대국임은 나의 승인 여부와 무관하다. 내가 그들의 도덕성에 실망하여 대국답지 못하다고 비판했다고 치자. 그런다고 그들이 대국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며, 내가 그들을 인정했다고 하여 그들이 비로소 대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럼에도 저들이 자국 이익의 실현을 위해 하는 행위를 대국답지 않다며 비난한다면, 그건 우리의 한계를 자백하는 행위일 수 있다. 자국 이익 실현을 위해 행사되는 위력 앞에 무기력함을 느끼자 도덕의 문제를 들고 나온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국은 대인다워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우리에게 익숙한 사대주의의 유산일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그런 인식이 전근대시기엔 중국에 대해, 광복 이후엔 미국에 대해 지녀왔던, 대국은 도덕적으로도 큰 나라라는 선입견을 추종한 결과일 수 있기에 그러하다. 도덕적 대국은 그저 신화에 불과할 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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