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석의 우충좌돌] 추월 전용 차선의 기능을 보장하라

입력
2019.05.01 04:40
26면

효과 없고 발전 막는 제한속도

핵심은 추월 전용 차선에 있어

한심한 규제 철폐 않는 건 무능

독일의 아우토반 ©게티이미지뱅크
독일의 아우토반 ©게티이미지뱅크

다른 나라에서는 많이 도입된 공유 차량의 도입이 기존 택시업계의 저항으로 정체되고 있고, 소선거제의 결함을 보완할 선거법 개정 등의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제1 야당의 육탄 저항이 있었다. 속도를 내야 할 여러 변화가 막혀 있는 상황은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 기회에 답답함을 유발하는 구시대적 규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1979년 이후 대부분의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는 시속 100㎞이고, 몇 개 고속도로의 일부 구간에서는 110㎞이다. 40년 동안 그대로인 셈이다.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며 주의 깊게 관찰해본 사람들은 이 제한속도가 얼마나 구시대적이고 사회 발전을 막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앞차와의 간격이 크게 벌어졌는데도 80㎞의 속도로 유유히 1차선에서 가는 차들이 있고, 추월하기 위해 다른 차선으로 옮겨 다니며 위험하게 운전하는 일이 흔히 벌어지고 있다. 그 위반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경찰차는 못 본 체 하니, 법은 비웃음의 대상이다.

곳곳에 ‘과속은 사고의 원인입니다’라는 홍보물이 붙어 있지만, 잘못된 규제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 자료를 보면, 교통사고 발생에서 과속이 원인인 경우는 0.8%일 뿐이다. 가장 큰 원인은 안전운전 의무 불이행(68%)이고, 24%가 안전거리 미확보다. 제한속도를 낮추면 사고가 덜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규제는 사람들을 바보로 여기는 후진적 행정이 아닐 수 없다. 속도 무제한으로 달릴 수 있는 독일 아우토반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프랑스의 제한속도는 시속 130㎞, 미국은 128㎞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대당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프랑스가 13.7건, 독일은 55건으로 우리의 93.7건보다 훨씬 적다. 교통사고는 단순히 제한속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단속 카메라 때문에 기회주의적으로 속도를 줄이는 운행 방식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과속이 사고의 큰 원인인 것처럼 더는 오도하지 말라.

물론 제한속도가 높아질 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대기오염 물질이 증가하며, 사고가 날 경우 치사율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지금도 실제로는 많은 차량이 단속을 피해가며 이미 제한속도 이상으로 위험하게 주행하고 있으니,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제한속도를 조금 높여서, 법을 지키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 또 정체되는 도로가 많으니 달릴 수 있는 곳에서는 달리는 것이 좋지 않은가. 더구나 과거와 비교하면 성능이 좋은 차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독일 아우토반이 훌륭한 것은 단순히 속도가 무제한이어서가 아니다. 규칙에 따라 1차선이 추월차선으로 엄격하게 보장되고 있고, 천천히 가는 차와 화물차들은 나머지 차선에서 주행하기 때문이다. 교통량이 많은 곳에선 4차선 이상으로 도로를 건설하면서 추월차선을 확보하는 것이 안전운행의 핵심 조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도 4차선 도로에서는 얼마든지 시속 130㎞ 정도로, 그리고 3차선 도로에서는 120㎞ 정도로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핵심은 제한속도를 높여 모든 차들이 빨리 달리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추월전용 차선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 있다. 1차선이 가진 추월선의 기능을 적극 살리는 대신, 화물차들은 100~110㎞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통정책의 핵심은 무엇보다 달릴 수 있는 곳에서는 달리게 하고, 천천히 가야 할 곳에서는 천천히 가게 하는 데 있다. 빠른 속도가 필요한 곳에는 빠름을 보장하고, 느림이 필요한 곳에선 느림을 보장하자. 지켜지지도 않고 사회발전도 가로막는 한심한 규제를 철폐하지 못하면, 정부는 무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 한심한 규제는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비참하게 만든다. 정당한 추월 기능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말로만 4차 산업 육성이니 세계 최초 5세대 이동통신이니 떠드는 짓은 허풍이자 허세다. 또 이 속도의 기능을 존중하지 않은 채 ‘소통하자’고 해보았자 헛소리일 것이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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