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의 제5원소] 지금 우리 싸우고 있음을

입력
2019.07.31 04:40
25면
실현가능성은 올바른 방향에 종속되는 변수이다. 동쪽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고 서쪽으로 차를 돌리면 정동진의 눈부신 일출을 결코 대면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단 하나의 문제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 채 후손들에게 계속 물려주게 된다. 영화 ‘암살’ 스틸컷. 쇼박스 제공
실현가능성은 올바른 방향에 종속되는 변수이다. 동쪽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고 서쪽으로 차를 돌리면 정동진의 눈부신 일출을 결코 대면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단 하나의 문제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 채 후손들에게 계속 물려주게 된다. 영화 ‘암살’ 스틸컷. 쇼박스 제공

일본 아베 정권이 수출규제를 시작하자 지금까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과거사 문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 중 하나가 과거사 문제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아베 총리 본인이 수출규제의 이유로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과 위안부 합의안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다 전략물자의 북한 밀반출이라는 안보이슈로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누구나 다 예상했듯 이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정 위반을 염두에 둔 결과일 것이다. 그마저도 명확한 증거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일본에서 전략물자 관리가 허술했음이 드러나 아베 정권의 처지가 곤궁해졌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황이 이러함에도 왜 국내 일각에서 우리가 먼저 과거사 문제를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이다. 과거사 문제로 수출을 규제했다면 이는 명백히 WTO 위반이다. 아베도 이걸 알기 때문에 대놓고 말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주장이 옳든 그르든 그걸 이유로 수출규제에 나선 것은 그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외교를 잘했니 못했니 말하기 전에 우선 아베 정권의 부당한 수출규제부터 당장 해제하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수출규제로 우리 반도체 산업이 다 죽게 생겼으니 우리 정부가 빨리 강제징용자 손해배상이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정치문제로 자유무역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는 WTO 체제를 우리 스스로가 부정하는 짓이다. 왜 우리가 먼저 나서서 WTO 정신을 거스르면서까지 아베 정권의 속내에 장단을 맞춰야 하나? 과거사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다. 마땅한 이유 없이 수출을 규제하고 나선 일본의 행위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본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국민들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나서자 자존심이나 반일감정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이른바 ‘항일 망국론’ 주장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분들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냉정하게’ 자존심과 반일감정을 접고 일본과의 협상에 나서라고 한다. 아직은 일본에 맞설 때가 아니라고 한다.

이분들이 말하는 망국이란 반도체 산업 붕괴로 촉발된 한국경제의 붕괴이다. 그걸 막기 위해 과거사 문제에서 어떤 양보를 할 수 있을까? 일본은 여전히 식민지배가 정당했다는 전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강제징용 손배 판결은 일본 식민지배의 부당함과 직결된 문제다. 그러니까 ‘항일 망국론’을 요약하면 한국 경제가 붕괴하는 걸 피하기 위해 일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자는 말이다. 부당하게 인권을 유린당한 피해 국민의 사정은 좀 모른 체 하자는 말이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지키는 게 아니라 경제발전이었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 않고 반도체 산업에 있다고 헌법 제1조2항도 고쳐야 할 판이다. 지금의 망국을 피하기 위해 과거의 더 큰 망국을 인정해 주자! 그렇게 되면 헌법을 고쳐 군국주의로 부활한 일본이 훗날 다시 우리를 침략하더라도 그 또한 정당행위가 될 것이다. 반도체 살리자고 후손들의 주권까지 우리가 지금 미리 포기하는 꼴이다. 망국을 더 큰 망국으로 돌려막자는, 참으로 기가 막힌 논리이다.

실현가능성도 많이 거론된다. 불매 운동 한다고 별 영향이 있을까, 지금 우리가 발버둥 친다고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 100여 년 전에도 비슷한 말들이 있었다. 이토 한 명 죽인다고 일본이 망할까, 만세운동 한다고 우리가 독립할까, 언제 군대를 키워서 일본군에 맞서나, 의병이 무슨 나라를 구했나 등등. 선조들이 총칼 들고 심지어 맨주먹으로도 일제에 맞섰던 것은 당장 일본군을 몰아낼 수 있다는 실현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일본군의 노예가 아니라 독립국가의 자주적인 국민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현가능성은 올바른 방향에 종속되는 변수이다. 동쪽으로 가는 길이 막힌다고 서쪽으로 차를 돌리면 정동진의 눈부신 일출을 결코 대면할 수 없다. 100년 전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좋은 환경에서 일본에 맞서고 있다. 목숨을 걸고 비장하게 전장에 나서는 수준도 전혀 아니다. 정부는 원칙과 정도를 지키며 세계 여론에 호소하고 국민은 냉정하게 불매 운동하는 지금의 역할분담은 최소한의 점잖은 저항일 뿐이다. 삼성이 망할 지경이면 나부터 나서서 모금운동이라도 할 생각이다.

당장의 실현가능성만 따졌다면 민주주의도, 과학문명도, 조선의 독립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단 하나의 문제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 채 후손들에게 계속 물려주게 된다. 우리 선조들은 비록 힘은 없었으나 그런 부끄러운 역사를 지금 우리에게 물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 높은 뜻을 후대에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역사의 기억 속에 기해년 조국의 모습을 한 획이라도 뚜렷하게 새겨 넣고 싶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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