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균형] 불타는 지구

입력
2019.09.03 18:00
수정
2019.10.01 12:55
29면
©OJKum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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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버티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만 이제 사그라진 더위 틈새로 밤에는 풀벌레 소리가 한층 짙어 갑니다. 그래요 가을입니다.

매년 여름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알 듯 모를 듯 오르는 지구 온도겠지요. 그럼에도 우리 삶의 목줄을 쥐고 흔들지는 않기 때문에 모두 급해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국내 정치가 복잡하여 살펴볼 겨를도 없지만, 환경단체들은 오는 21일 전 세계 기후위기비상행동을 시작합니다. 한 달 전부터 뉴스에 오르던 지구적 산림화재가 특히 관심입니다. 산림화재가 직접 연관된 우리 삶의 조각이라는 건 2014년 시베리아 산불로 인해 한반도에서 그 초미세먼지를 고농도로 확인했다는 것 수준입니다. 이러한 직접 피해보다는 항상 더디게 다가오는 간접 피해가 더 가공할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 환경문제의 흔한 특징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는 올해 지구의 산불은 인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곧장 북으로 올라가면 만나는 시베리아 산림 5만4,000㎦ 이상이 8월에만 불탔습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면적을 넘는 12만㎦가 타버렸습니다. 여름 평균 15~18도를 보이는 이 지역은 올 여름 27도를 기록했습니다. 가뭄과 고온, 강한 바람은 넓은 지역에서 대규모 산불을 만들었고 지구의 이산화탄소 20~40%를 흡수하는 러시아의 광활한 산림이 오히려 탄소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산불에서 날아온 재와 그을음은 시꺼멓습니다. 이미 알래스카와 캐나다까지 연기는 도달했지요. 검게 변한 땅은 더 많은 빛 에너지를 흡수하며, 데워집니다. 그렇게 툰드라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얼음에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나옵니다. 더 강력한 온실가스이자 광합성으로도 흡수가 불가능한 가스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구동토층의 온난화 문제로 걱정해 왔는데 새로운 변수들이 생기면서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는 것입니다. 메탄가스로 인해 더 더워지고, 더 많이 녹고 더 많은 메탄가스가 분출됩니다. 냉동고 문을 열어 냉장고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북반구의 이런 상황에 남반구도 난리입니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에 따르면 올해에만 벌써 8만9,0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했고 작년 동기대비 72%나 늘었습니다. 이중 절반 이상이 아마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아마존 산불의 가장 큰 원인은 목축과 농지를 확보하기 위한 고의 발화일 것입니다. 숲을 없앤 공간은 주로 목축과 먹이자원 농경이 그 뒤를 잇습니다. 쇠고기 최대 수출국인 브라질에서 소를 숲 안에서 키울 수는 없으니까요. 고의발화를 의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산불이 새로이 개간한 농경지 인근에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 행위가 변화된 기후와 숲의 건조화와 맞물려 유례 없는 대규모 화재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지구의 허파라는 시베리아와 아마존산림이 이렇게나 타들어가고 있으나 우리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 틀어대는 에어컨은 더 많은 열기를 뿜어대고, 더 많은 석탄을 때야 합니다. 아시아 열대우림과 맞바꾼 팜유로 튀긴 식재료, 아마존 숲을 대체한 콩과 고기에 대해 지속가능성 고민은 여전히 먼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산불이 미치는 거대한 영향을 말하는데도 이리 답답한데, 그 숲속에서 죽어가는, 또 살아가야 하는 뭇 생명들과 생태계 균형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다시 우리 삶과 연관지어 이야기하죠. 만약 앞으로 한 달 동안 시베리아에 큰 비가 오지 않고 가을이 짙어진다면, 어쩌면 그 많은 화재 미세먼지는 북서풍과 함께 한반도로 날아올 테고, 그제야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떠올릴 것입니다. 우리가 각성하지 않는 한 그렇게 기후변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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