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통찰력 강의] 좀 모자라면 어때?

입력
2019.09.16 18:00
29면
2016년 4월 11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이틀 앞두고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를 공개했다. 배우한 기자
2016년 4월 11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이틀 앞두고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를 공개했다. 배우한 기자

선거 때가 되면 온갖 후보자들이 나선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 돈 많은 사람, 학식이 뛰어난 사람 등 다양하다. 그런 자산이 정치적 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매번 경험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린다. 그러니 잘난 사람들만 나선다. 스펙은 부족해도 정치적 소신과 유권자에 대한 신의가 두터운 후보자들은 외면 받는다. 악순환이다. 좋은 정치인을 가려내는 건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다. 이제 우리가 그걸 읽어내고 겉만 번지르르한 정치꾼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덤벙대기 일쑤고 단순하며 일단 저지르는 일에는 단연 자로(子路)가 압권이다. ‘논어’에서 언급되는 그의 인물평에 ‘비속하고 거칠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흥미로운 건 ‘논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자로라는 점이다. 아마도 반면교사의 목적도 있겠지만, 어쩌면 가장 인간의 냄새가 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친밀하고 따뜻한 느낌이 있는 인물을 꼽자면 단연 자로다. 자로는 본디 야인 출신이며 힘도 셌다. 용기와 의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차례 곤경에 처한 공자를 구해내기도 했다. 그러니 머리는 부족해도 의협심 강한 그에게 공자는 어쩌면 동지애를 느꼈을지 모른다.

공자보다 고작 아홉 살 적은 늙은 제자 자로는 스승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했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그의 성향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공자는 그런 ‘덜렁이’ 늙은 제자 자로에게 실망하고 책망하기도 했지만 대화를 잘 들여다보면 인간미 담뿍 담긴 살가운 애정의 감정이 녹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자로는 스승에게 조금이라도 부족한 게 있거나 자신이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앞 뒤 재지 않고 행동에 나서서 때론 곤혹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자로는 분명 여러 제자들에 비해 학문은 깊지 못했다. 가장 나이 많은 제자가 후배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경우 주눅이 들거나 눈치를 보게 될 텐데 자로는 별로 망설이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재고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공자도 자로에 대한 각별하고 애틋한 감정을 가졌다. 자로는 용맹스러웠고 직선적이고 성급한 성격 때문에 예의바르고 학자적인 취향을 가진 제자들과는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공자의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논어’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고 따뜻하여 제자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자로는 남의 시선 따위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는 물욕이 없었고 부자나 강자에게 주눅 들거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자로의 진면목은 바로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이었다. 그것 때문에 끝내는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하였지만 의로움에 대한 그의 신념과 실천은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고 심지어 스승인 공자에게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자로는 스승 공자에게도 늘 무조건 순종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의롭지 않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스승에게 따졌다. 공자에게 그렇게 대들 수 있는 제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로는 배움과 실천의 일관성과 일치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세밀한 계산과 깊은 속뜻을 헤아리는 데에는 미숙해도 의로운 일에는 무조건 따랐고 심지어 그게 자신의 죽음을 요구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 공자는 일찍이 자로의 그런 심성 때문에 걱정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틈날 때마다 자로의 그런 점을 다듬으려 했다. 공자는 그런 자로를 진심으로 아꼈다. 자로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끊어버리는구나. 하늘이 나를 끊어 버리는구나!”라고 두 번 외쳤다고 한다.

공자는 그의 모자람을 안타까워했지만 가장 인간적으로 친밀하게 느꼈고 속으로 챙겼다. 그의 질박한 품성은 결코 가볍게 혹은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제자들도 그런 자로를 때로는 비웃었지만 가장 좋아하던 선배였던 건 분명하다. 때론 똑똑한 사람보다 솔직담백하고 질박한 성품에 더 끌리는 게 사람의 관계다.

어쩌면 지금은 바로 그런 자로 같은 사람이 더 필요한 시대일지 모른다. 너무 셈속에 빠르고 재바른 사람들만 설친다. 이른바 386세대의 타락과 비겁으로의 퇴행은 그런 세태의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초심을 유지하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되 불의한 짓은 하지 않는 단순하고 지속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정화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부와 재능과 학식만 따진다. 그게 권력인 줄 안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일관된 태도와 행동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향기를 덮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꼼꼼하게 찾고 가려 뽑아야 한다. 이제 곧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유권자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하려면 스스로 눈 부릅뜨고 겉만 화려한 쭉정이를 날려버려야 한다. 그게 우리의 몫이다. 지금부터다.

김경집 인문학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