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칼럼] 9월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

입력
2019.09.17 18:00
29면
스웨덴의 16세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 플리머스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15일 만인 지난 달 28일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AP 연합뉴스
스웨덴의 16세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 플리머스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15일 만인 지난 달 28일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AP 연합뉴스

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각국의 청소년들이 파업을 벌였다.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시내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청소년들은 직접 정보를 모았다. 웹 사이트를 검색하고 과학저널을 읽고 교사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청소년들은 ‘또 다른 지구는 없다’, ‘내 이름은 그레타’ 같은 손팻말을 들었다. 팻말의 주인공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열여섯 살인 환경 운동가이자 노벨 평화상 후보다. 그레타는 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기성세대에게 따져 물었다.

“어째서 화석연료가 해롭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사용하는 거죠?”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손을 구하기 위해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현재 인류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더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허비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행동에 나서야만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맞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는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낱낱이 알고 있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요즘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변화’라는 말보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언론에 더 회자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온난화’라는 말은 좋게 들린다. 추운 것보다는 따뜻해야 살기 좋지 않은가. 또 ‘변화’에는 좋은 변화도 있다. 하여 모호한 표현을 피하고 현실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기후위기”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기후위기’와 함께 ‘기후붕괴’ 또는 ‘기후비상사태’라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지구 기온의 상승이다. 2015년 파리 기후정상회담에서는 산업화 이후 지구 기온의 상승을 2도에서 막기로 했다. 2018년 인천에서 열린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상승폭을 1.5도로 정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지난 100여 년 동안에 지구의 평균 기온은 이미 1도나 상승했다. “아이고 겨우 1도 가지고 뭘 그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속도는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서 간빙기로 변화한 속도보다 20배 이상 빠른 추세다. 시속 100㎞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시속 2,000㎞로 달리는 상황을 생각해 보시라. 이게 어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1.5도 상승만으로도 지구는 심각한 위기에 빠지지만 2도가 상승하면 파국에 이른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인간들이 개과천선해서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2도가 상승한 다음에는 소용이 없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분들도 1.5도 상승까지는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 세계가 오늘과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불과 12년 후인 2031년에 닥칠 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 때다.

우리는 이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2000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였다면 매년 4%씩만 줄이면 됐다. 하지만 2019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인다면 매년 18%씩 줄여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는 배출할 이산화탄소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 세대의 이산화탄소를 당겨서 다 써버렸다.

그렇다. 우리는 진실을 다 알고 있다. 다만 행동에 나서지 않을 뿐이다. 화석연료를 더 이상 태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화석연료를 포기하지 못한다. 왜? 그 위기가 당장 나보다는 다음 세대의 것이라는 잘못된 추정 때문이다. 누가 가장 분노할까? 당연히 다음 세대들이다. 그레타는 동료 청소년들에게 외친다. “청소년 여러분, 어른들이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게 계속해서 부담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일부 어른들이 부담을 느끼지 시작했으니 말이다. 9월 23일 뉴욕에서 유엔 기후 정상 회담이 열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각국 정상에게 지구 기온 1.5도 상승을 막기 위한 계획을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각국 정상들이 어떤 계획을 들고 뉴욕으로 모일지 궁금하다. 하지만 큰 기대는 없다. 아직 모든 어른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시민단체는 9월 20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 동안 ‘기후 파업’을 선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9월 21일에는 ‘기후위기 비상행동’ 그리고 9월 27일에는 ‘청소년 기후행동’이 계획되어 있다. 서울과 경기 시민은 혜화동 대학로에 모인다. 시민의 정치적 의지가 사회를 바꾸고 기후위기를 벗어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그레타가 되어 묻고 외칠 것이다.

기후 파업은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사이의 기후 연대를 맺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빤히 보이는 기후위기에서 벗어나 다음 세대에게 살 터전을 남기는 첫 걸음이 시작된다. 시민이 촉구한다. 정부는 이에 발맞추어 움직여야 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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