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의 시 한 송이] 산동반점

입력
2019.10.25 04:40
29면

가장 많이 건네는 인사에는 어김없이 ‘잘’ 이라는 부사가 들어가지요. ‘잘 지내지?’ 라고 묻고, ‘잘 지내’라고 답하지요. ‘잘’은 균형과 실패 없음을 가리키지요. ‘잘’은 결국 내게 돌아오는 공이지요. 내가 수행해내야만 하는 것이지요. “크고 먼 나라를 감추고 있”는 이 만능의 외마디는, 그래서, 잘 있다는 답이 오면, 잘 지내는구나로 여기게 하지요. ‘잘’이 들어가는 인사는 가장 평범한 인사, 가장 무난한 인사이기도 한데 말이죠.

나는 잘 지내는 언덕에 닿아본 적이 없어서 잘 지내라고 대답하는, 아니 대답할 수밖에 없는 사람. 고를 수 있는 다른 말이 남아 있지 않거든요. 나는 ‘잘’로 물어왔기 때문에 ‘잘’로 받을 수밖에 없어요. 갈 수 없으니 가는, 떠날 수 없으니 떠나게 된, 애가 끓는, 애가 타는, 애가 끊어지는 시간을 겪었거든요. 나는 나와 상관있는 일을 두고 나랑 상관없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 그 풍경에서 지워져야 하는 존재가 된 사람. 퍼질러 앉아 울 수 있는 사람도 못되기에 그렇게 우는 사람을 보면 멀리 멀리 돌아가요. 그 울음을 보호해주고 싶거든요. 무심한 듯 오래전부터 동네를 지켜주고 있는 산동반점처럼요.

절벽을 경험하고 절벽에서 솟아난 사람이라면, 최후의 벽이 무너져 내릴 때 내가 딛고 있는 곳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게 된 존재이지요. 그래서 산동반점에 랩을 씌우는 마음은 내가 눈 감고도 만져보고 싶은 절박함과 같다는 것을, 쉽게 벗겨지고 찢기는 비닐 랩이 바로 ‘잘’의 구체성, 건네는 온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산동반점은 마포에 성남에 목포에 속초에 구미에도 있어요. 멀고 큰 나라는 가까운 곳에 들어 있는지도 몰라요. 어떤 존재의 힘든, 어려운 시간을 알게 된다면, 다른 인사를 건네 보기로 해요. 랩을 씌우는 마음. 그 존재의 절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의 힘을 조금씩 보태주기로 해요. 절박한 인사만이 절박한 존재에게 닿을 수 있어요. ‘질문이 달라지면 대답이 달라질 수 있어요.’ ‘잘’의 자리에 ‘잘’ 말고 ‘잘’의 구체성을 담아 건네면, ‘잘’을 보호할 수 있어요. 존재는 살 수 있어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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