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좋은 몸매” “죽을래?” 인권 꼴등 전국체전

입력
2019.10.28 12:00
수정
2019.10.28 18:52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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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식전공연에서 가수 김연자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식전공연에서 가수 김연자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야, 이 XX야, 죽을래, 그 따위로 할 거야?” “XX놈들, 나가 뒤져야 된다.”

이달 초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코치나 감독들이 선수들을 독려한다며 내뱉은 말들이다. 최근 체육계에서 잇따라 터진 폭력 사건 등을 계기로 인권 의식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현장에선 과거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많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달 초 열린 100회 전국체전에 참여한 고등학교 학생 선수를 중심으로 인권상황 모니터링을 했더니 선수들의 인권침해 상황이 적잖게 확인됐다 28일 밝혔다.

올해 체육계는 그간 앓아오던 고질병이 터졌다. 여자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체육계 미투 운동’이 번져 나갔다. 그래서 올해 전국체전 주최측인 대한체육회는 ‘인권친화적 대회’를 내걸었다. ‘인권침해 신고기관’을 별도로 만들고 지난 4일 개막식 때는 ‘인권침해 사실이 있으면 즉각 신고하라’는 내용의 동영상까지 내보냈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노력이 무색해진다.

‘경기를 잘 못했다’는 이유로 일부 지도자들이 고등학생·대학생 선수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욕설과 고성을 지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여전했다. 경기 중 실수를 한 선수에게 지도자가 “저 XX 안 받았어야 했는데”라며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특히 일부 구기 종목에선 감독의 폭언이 이어지자 “저게 감독이냐, 욕하지 마라”고 관중들이 먼저 나서서 따진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고 인권위는 설명했다.

여자선수나 직원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한 심판은 경기장 안내 여성 직원에게 “야 딱 내가 좋아하는 몸매야”라고 했고, 일부 관중도 여성 선수를 향해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 성숙하지 못한 관중 문화를 보였다. 일부 여성 선수나 자원봉사자들이 종목단체 임원 등에게 과일이나 간식 수발을 드는 등 성차별적 의전 장면도 빈번하게 목격됐다고 인권위는 설명했다. 일부 종목에선 작전 타임 때 남자 코치가 여자 선수의 목덜미를 주무르고 만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부대 시설도 시원찮았다. 탈의실, 대기실, 훈련장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선수들은 관중석이나 복도에서 관중들과 섞인 채로 쉬고 훈련하고 몸을 풀어야 했다.

인권위는 “주최측은 선수들이 최선의 기량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인권침해 및 권위주의적 문화는 개선할 의무가 있다”며 “더구나 높은 단상에 앉아 어린 여성들의 차 심부름을 당연한 듯이 받고 있는 구시대적 단상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체 접촉이 격려나 응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도 그간 훈련, 교육을 빙자한 성폭력 사례가 많았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앞으로도 대규모 스포츠 경기가 인권친화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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