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칼럼] 황교안 ‘총선 승리 플랜’의 민낯

입력
2019.10.31 18:00
수정
2019.11.01 10:23
30면

“분열 땐 패배”…보수통합 목숨 건다더니

지지율ㆍ친박 변수에 유승민 제안 날려

쇄신결단 없고 메시지 낡아 회의론 증폭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1일 '제1차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등 영입인사 8명에게 당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오대근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1일 '제1차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나경원 원내대표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등 영입인사 8명에게 당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오대근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조국 논란’이 가열되던 8월 하순 문재인 정권 규탄 광화문 집회에서 “20대 총선까지 20번의 선거 중 보수우파 세력이 패배한 선거는 세 번인데, 세 번 모두 분열 때문에 졌고 뭉칠 때는 다 이겼다”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 귀중한 헌법가치를 지키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다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유우파 통합을 위해 나를 내려놓겠다”며 “죽기를 각오하고 앞장서겠다”는 말도 했다.

올 초 한국당에 입당한 황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줄곧 우파통합 이니셔티브를 공약했으니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또 그가 보수의 패배로 꼽은 세 번의 총선(5대, 17대, 20대)은 분열 때문이라기보다 부패와 독선, 오만과 전횡 탓이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그의 말이 무게 있게 다가온 것은 통합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겠다는 결기와 의지가 꽤 신선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두 달 넘게 흐른 지금, 조국 퇴진 투쟁에 함께한 보수진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황 대표는 각종 인터뷰에서 “문 정권과 싸우는 모든 세력이 힘을 합칠 것이고 내가 ‘회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중언부언했을 뿐, ‘삭발’ 외에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 그의 분석대로라면 보수우파는 네 번째 패배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원희룡 제주지사 등 보수통합론자들이 제시한 시간표를 봐도 21대 총선을 위한 통합 논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9월 말 손학규 대표와 결별하고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을 발족한 뒤 언론 인터뷰를 통해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 보수로 나가자, 새집을 짓자’는 3원칙을 제시하고 황 대표와 만날 의향을 밝힌 것은 좋은 계기였다. 이에 황 대표는 “대화가 필요하면 대화하고 만남이 필요하면 만나고 회의가 필요하면 회의체도 할 수 있다”고 남 얘기하듯 대꾸했다. 간절함은커녕 상대에 대한 예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변혁 모임에 참여한 의원들의 결이 저마다 다르고 한국당 내 반유승민 기류가 만만치 않으니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파 통합이 총선 승리와 정권 심판, 나아가 정권 탈환의 전제이자 열쇠라고 역설해온 황 대표인 만큼 그 제안을 놓치지 말고 최소한 논의의 장은 만들었어야 했다.

문제는 역시 친박에 둘러싸인 황 대표의 기회주의적 리더십이다. 탄핵의 강을 건너고 개혁 보수로 세력을 재건하자는 유 의원의 제안은 복잡한 게 아니다. 정치적ㆍ법적 심판이 끝난 박근혜 탄핵은 역사의 평가에 묻고 따뜻하고 유능한 보수 정체성으로 면모를 일신하자는 이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목표와 노력도 없이 반사이익에만 기대 총선을 치르고 이길 생각을 했다면 황 대표의 정치적 심보와 상상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입으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소아(小我)를 내려놨다고 말하면서 어떤 결단도 내리지 않고 친박 눈치 보기에 급급한 리더십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10월 초 ‘조국 정국’이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한국당은 엄청난 특수를 누렸다. 진보의 민낯과 이중잣대에 분노한 중도무당층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를 거둬들이고 일부는 홧김에 한국당 지지로 옮겨 탄 덕분이다. 이 대목에서 황 대표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통합 의제에 손대지 않고 총선까지 갈 수 있다고 오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경제와 안보에 켜진 경고등에 아랑곳없이 셀프 표창장 놀음과 공천 가산점 소동을 벌일 순 없다.

통합에 뜻이 없으니 인적 쇄신 약속도 공수표가 될 공산이 커졌다. 황 대표가 야심 차게 영입한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입당이 최고위원들의 반대로 보류된 것은 몇몇 측근과 친박에 의존하는 그의 리더십의 한계와 불신을 반증한다. 선거는 구도ㆍ인물ㆍ메시지의 3박자라는데, 분열된 야권과 구태의연한 인물에 “박정희 정신을 배우자”는 낡은 메시지로 어떻게 승부하려는가.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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