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선율 따라… 발길 따라… 김광석과 함께 7080 추억 속으로

입력
2019.11.29 04:40
15면

 <7> 대구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칙칙한 방천길이 영원한 가객 고 김광석 삶과 음악으로 환하게 

오준식(83·경북 예천), 윤정옥(74) 부부가 김광석 노래 중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벽화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윤희정 기자 yooni@hankookilbo.com
오준식(83·경북 예천), 윤정옥(74) 부부가 김광석 노래 중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벽화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어 보이고 있다. 윤희정 기자 yooni@hankookilbo.com
도시재생 모범사례 답사를 위해 울산에서 온 구영록(56ㆍ오른쪽 5번째)씨와 주민자치위원회원들이 김광석 동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도시재생 모범사례 답사를 위해 울산에서 온 구영록(56ㆍ오른쪽 5번째)씨와 주민자치위원회원들이 김광석 동상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1964~1996). 내년 1월이면 그가 간 지 24년이 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그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노래하는 철학자’란 별명이 붙은 그의 노래는 방송 음악프로그램과 공연장, 거리에 울려 퍼진다.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각종 공연, 대회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그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은 김광석 성지나 마찬가지다. 연중 그의 팬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좋아하는 김광석 노래 들으며 걸을 수 있어 좋다 

지난 25일 오후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 길.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전국 최초의 길이다. 전날과 달리 쌀쌀한 날씨에다 평일인데도 골목길엔 제법 많은 인파가 붐볐다.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길 가득 울려 퍼지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걷고 있었다. 김광석 동상과 함께 기념사진 찍기, 김광석 벽화 감상, 추억의 교복 체험, 연탄불에 설탕을 녹여 별 모양을 만드는 ‘달고나’ 만들기 체험, 딱지치기 등 시공을 초월한 듯하다.

울산에서 주민자치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온 구영록(56ㆍ울산 양정동)씨는 “도시재생 성공사례 답사를 위해 왔다”며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우리 연배의 예술가인 김광석의 스토리와 노래 등을 잘 활용해 그 시절 향수에 빠질 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김광석 벽화와 노래, 7080추억 강제소환 

김광석 길은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과 대구의 대동맥인 신천대로 콘크리트 옹벽 사잇길을 말한다. 달구벌대로 수성교 시작점에서 남쪽으로 동덕로 연결부까지 너비 2,3m, 넓은 곳도 기껏 4m 정도에 길이도 350m 정도에 불과한 골목길이다. 이처럼 좁은 골목길을 찾은 관광객은 지난해 160만명에 이른다.

이 길엔 말 그대로 김광석과 관련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옹벽에 새긴 40여점의 벽화와 각종 조형물은 모두 김광석을 테마로 한다. 예술인 30여명의 혼이 담긴 작품이다. 골목엔 1년 365일 그의 대표곡이 흐른다. 입구부터 연신 사진을 찍으며 신이 난 오준식(83ㆍ경북 예천군) 윤정옥(74)씨 부부는 “김광석 음반을 다 사 모을 정도로 광팬인데, 이곳에 오니 김광석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 황홀할 지경”이라며 “특히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래는 꼭 우리 부부 이야기인 것 같아 감회가 색다르다”고 환히 웃었다.

 추억의 문방구 등 시간여행 인기 

벽화 맞은편 상가지역엔 커피숍과 떡볶이가게, 편의점, 주점부터 딱지 등 1980년대까지 유행했던 것들을 파는 추억의 문방구까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시장 안쪽엔 지금은 사라진 ‘대한뉴스’를 본 딴 상호도 눈에 띈다.

수년 전부터 다수의 한류드라마 촬영지로 부상하면서 동아시아권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다. 현빈 한지민 주연의 ‘하이드 지킬, 나’, 소지섭 신민아 주연의 ‘오 마이 비너스’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 홍콩 대만 일본 등 해외관광객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대만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왕즈란(24)씨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을 보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왕즈란(24ㆍ왼쪽)씨와 친구들이 벽화 속 인물을 따라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대만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왕즈란(24ㆍ왼쪽)씨와 친구들이 벽화 속 인물을 따라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은 관광객들이 버스킹 공연자의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걷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은 관광객들이 버스킹 공연자의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걷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로 시작 

김광석 길은 원래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했다. 김광석 길과 맞닿은 방천시장은 해방 후 일본 만주 등에서 살다 귀국한 주민들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형성된 전통시장이다. 싸전(쌀가게)과 떡전(떡집)이 유명했고, 한때 점포 수가 1,000개가 넘었지만 다른 전통시장처럼 이곳도 쇠퇴일로를 걷고 있었다.

프로젝트는 2009년쯤부터 본격화했다. 대구 중구는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문화를 입혀 사람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취지였다.

2009년 상반기에 빈 상가를 활용해 저명한 지역작가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시장환경도 개선하자는 예술가와 상인 일촌 맺기 등 13개 사업이 추진됐다.

그 해 하반기부터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김광석 길은 2단계 18개 사업 중 하나였다. 1단계(2009년 10월~2010년 5월)로 가판대 디자인 개선과 시장게이트 설치 등 13개 사업, 2단계(2010년 6월~2011년 3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조성 등 18개 사업, 3단계(2011년 5월~12월) 상인교육, 토요 오! 오시장 등 4개 사업을 했다.

50년 넘게 방천시장에서 고춧가루 등을 판매해 온 성주상회 이순남(73) 사장은 “김광석 길이 생기기 전까지 죽은 시장이었다”며 “김광석 길이 생기면서 예술인과 일반 관광객들이 늘면서 생기를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도시재생사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중구는 김광석 길 쌈지공원과 야외공연장, 골목방송국, 김광석 길 스토리하우스, 공영주차장, 김광석 길 콘서트홀 막 구조물 등을 잇따라 설치하고 있다.

LED조명으로 만든 기타 줄과 김광석 노래 ‘일어나’ 음표를 상징해 제작한 ‘빛길’, 8m짜리 초대형 기타 조형물은 김광석 길이 밤이 아름다운 길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 기타 조형물은 18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통기타의 명문 마틴 기타(Martin Guitar)가 기증한 ‘M-36 김광석 트리뷰트에디션’을 모델로 했다.

벽화가 그려진 옹벽과 신천대로 사이 완충지대는 골목길보다 조용하고 은은한 경관조명이 안정감을 더해줘 걷기에 그만이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입구 앞 조명조형물 기타 줄과 김광석 노래 ‘일어나’ 음표를 상징 제작한 ‘빛길’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입구 앞 조명조형물 기타 줄과 김광석 노래 ‘일어나’ 음표를 상징 제작한 ‘빛길’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김광석 추모 2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브랜드 마틴 기타사에서 김광석을 한국 최초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로 선정해 제작해 기증한 기타 ‘M-36 김광석 트리뷰트에디션’을 재현해 8m 초대형 기타 조형물이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앞에 설치되어 있다. 대구 중구 제공
김광석 추모 20주년을 맞아 세계적인 브랜드 마틴 기타사에서 김광석을 한국 최초 리미티드 에디션 모델로 선정해 제작해 기증한 기타 ‘M-36 김광석 트리뷰트에디션’을 재현해 8m 초대형 기타 조형물이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앞에 설치되어 있다. 대구 중구 제공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전경. 대구 중구 제공
대구 중구 대봉동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전경. 대구 중구 제공

 대구 대표 문화예술공간으로 도약 

김광석 길은 지역 대표적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콘서트와 문화공연, 마을축제, 버스킹 등이 연중 열린다.

길 입구 쪽 뮤직박스 형태의 ‘골목방송국’에서는 2015년 1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12시부터 2시간 동안 대구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거리에서 시즌5’를 방송한다. 2013년부터 ‘김광석 나의 노래 다시 부르기’ 대회가 매년 가을마다 열린다. 또 2014년부턴 매년 1월 ‘김광석 추모콘서트’가,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엔 지역 음악인들의 등용문 격인 ‘매마토 문화공연’이 펼쳐진다. 중구는 신규 버스커에게 기회를 주고, 공연수준 향상 등을 위해 버스킹 사전예약제도 도입했다.

시민과 관광객들이 김광석 길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9 김광석 행복나눔 가을콘서트’ 축하무대를 관람하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시민과 관광객들이 김광석 길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9 김광석 행복나눔 가을콘서트’ 축하무대를 관람하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2019 방천아트페스티벌'에 참석한 관광객들이 거리 곳곳 다니며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2019 방천아트페스티벌'에 참석한 관광객들이 거리 곳곳 다니며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대구 중구 제공

 김광석 길도 피하지 못한 젠트리피케이션 

도시재생사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대표 관광지라는 오명도 얻었다. 지난 10년간 땅값이 10~20배 오른 곳도 있고, 몇 년 만에 임대료가 2, 3배 폭등하면서 원래 이곳의 주인인 예술인과 시장 상인들이 떠나고 있다. 이들이 떠난 공간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판매점으로 채워졌다. 싸전 떡전이 있던 곳에는 ‘포차’나 고깃집, 주점이 들어섰다.

도길영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상인연합회장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김광석 길 색깔 강화 등을 위해 올해 초 상인연합회를 구성했고 내년 임차인과 임대인, 구ㆍ시 등과 연계한 공청회를 추진 중이다”며 “장기적인 발전 관점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볼거리가 새롭지 못하다는 것도 숙제다. 연구용역결과에 따르면 관광객 평균 체류 시간은 2시간 8분, 종합만족도는 71.6점으로 다소 만족하는 수준에 그쳤다. 자칫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생겨났다 쇠퇴하는 ‘~리단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중구는 주민, 상인회, 예술가, 전문가 등 여론을 수렴해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발굴하는 등 장기발전 계획을 마련 중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대봉동과 방천시장의 역사를 바탕으로 주민과 마을자원을 연계해 김광석 길, 방천시장, 카페, 취미공방, 웨딩거리를 테마별로 발전시켜 방문객들의 동선을 다양화한다는 복안이다.

류규하 대구 중구청장은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한 벽화 길과 골목상점마다 문화를 입혀 사람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김광석 길을 조성,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는 등 중구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며 “김광석 길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관광 프로그램 개발과 시설유지 관리에 힘써 김광석 길이 앞으로 대구관광의 핵심 트렌드가 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윤희정 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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