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석학 칼럼] 반유대주의에 대한 트럼프의 인종차별 금지령

입력
2019.12.30 04:40
29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유대교를 인권법상 차별금지 대상으로 해석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포토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유대교를 인권법상 차별금지 대상으로 해석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포토아이

트럼프 대통령은 반유대주의를 미국의 심각한 문제로 보지만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좋은 사람들’이라고 보기 때문인지 유대인과 다른 소수자가 “우리 자리를 대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네오나치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에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이 더 골칫거리다.

트럼프의 대통령 명령은 반유대주의에 대항하지 않는 교육기관에 연방예산을 쓰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이에 따르면 민족, 인종, 국가적 특성에 따라 유대인들이 차별받는 집단을 보므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곧 반유대주의가 된다. 이것은 사실 반시온주의가 반유대주의라 믿는 트럼프의 유대인사위의 입장이다.

유대인의 정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만큼 반유대주의도 그렇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유세에서 “평범하고 괜찮은 사람들”의 이익을 갉아먹는 수상한 국제금융가집단을 비난했을 때, 일부는, 특히 조지 소로스의 이미지를 이용해 이를 강조했을 때, 반유대주의적인 비유로 봤을 수 있다. 트럼프는 진보적 유대인 인권운동가와 박애주의자가 의도적으로 난민과 불법체류자의 ‘무리’에게 자금을 지원해 미국에 혼란을 빠뜨릴 수 있다고 암시했다. 소로스의 고향 헝가리에서 그를 공공의 적으로 내모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맞다.

유대인 영향력에 관한 음모론은 전부터 있었다. 1903년 출판된 러시아 위서 ‘시온의정서’는 유대 은행가ㆍ금융가가 비밀리에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을 대중화시켰다. 헨리 포드는 이 억지를 믿은 유명인 중 하나다.

유대국가 초기, 이스라엘은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까닭에 많은 좌파가 호응했다. 구미의 좌익이 이스라엘에 등 돌린 것은 1967년 6일전쟁 후, 이스라엘이 아랍영토를 점령하고부터다. 이후 이스라엘을 식민국이나 인종차별국으로 보는 일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스라엘과 같거나 다를 수 있지만, 민간인이 외국군의 지배하에 있게 되면 늘 그렇듯 점령이 억압으로 이어진다는 것엔 대부분 인정한다. 대학교 등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비판한다고 바로 반유대주의자로 보진 않지만, 그렇게 인식되는 극단적인 반시온주의가 있다. 선을 넘었느냐가 문제다.

일부는 유대인들이 나라를 가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반유대주의라 하며, 이는 실제 트럼프 대통령 명령의 전제 중 하나다. 교육기관 등에서 보이듯 극좌파에는 팔레스타인 억압에 너무 집착해 이스라엘을 세계최대 악으로 여기는 부류가 있다. 과거 반유대주의자들이 종종 유대인과 미국을 근본 없는 자본주의 해악으로 결부한 것처럼 일부 현대 반시온주의자들은 반미주의와 이스라엘 혐오를 결부시킨다.

특정 좌파 눈엔 이스라엘과 그 뒷배인 미국이 마지막 인종차별 서양제국주의자 그 이상이다. 유대인자본가 비밀단체에 대한 생각은 극단보수주의에 대한 영향처럼 좌익 악마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해로운 생각은 영국노동당을 괴롭혔고 당수 제레미 코빈은 끝까지 몰랐다.

반시온주의는 반유대주의로 바뀔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비평가가 반시온주의자는 아니며 모든 반시온주의자들이 유대인들에게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유대인’의 정의에 의해 좌우된다. 할라카(유대율법)에 따르면, 모친이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은 유대인이다. 일반적 정통 견해다. 그러나 더 진보적인 개혁파 유대인들은 부친이 유대인이어도 유대인으로 본다.

대부분의 정통유대인은 타 종교로 개종해도 유대인으로 보지만 개혁파 유대인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은 ‘전 유대인’에게 이민권을 인정하나, 유대인 신분을 정의하진 않았다. 1970년 이후, 조부모 중 한 명만 유대인이어도 이스라엘 시민자격을 인정했다. 1935년 나치의 뉘른베르크법은 부모 중 한 명만 유대인이면 독일시민권을 인정했지만 ‘모두’ 유대인이면 안 됐다.

이런 것이 복잡해 보였는지 이스라엘 소설가 에이모스 오즈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자신을 유대인으로 부를 정도로 미친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다.”

반유대주의에 대항하는 대통령 명령에서 인종ㆍ국가 신분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돼 보인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대표한다는 유일한 국가이지만 모든 유대인이 동조하진 않는다.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트럼프의 명령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이 배신자나 반역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유대인을 ‘인종’으로 정의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유대인은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다. 예멘, 에티오피아, 러시아, 모로코, 스웨덴 유대인은 어느 한 민족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유대인을 인종으로 본 것은 히틀러고, 굳이 따를 이유는 없다.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은 찬성이나, 대통령 명령에 반유대주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실수며,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견해와 깊이 관련된 때는 더 그렇다. 모든 극단주의자들이 그렇듯 극단적 반시온주의자들은 위협이 될 수 있지만 평화적 표현을 벗어나지 않는 한 용인해야 한다. 자금 압박으로 학생 의견을 억누르는 것은 미국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자유에 반하며, 다른 징후와 더불어 헌법수호가 현 미행정부 정통성 주장의 주요 기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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