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성 칼럼] 절망의 선거

입력
2019.12.29 18:00
30면

절망의 벽을 수없이 넘은 한국 정치사

지금 정치는 無恥의 야비함 그 자체

절망의 선거지만 정치판을 확 바꾸자

‘내년 4월 15일 총선은 어떨까. 현재로서는 절망의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나라가 재생하는 계기가 될지 회의적이다(…).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자. 절망의 선거지만 우리 국민 한 명 한 명이 깊이 고민해보자. 이 나라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동안의 관성을 버리고 곰곰이 따져보자.’ 사진은 28일 오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계속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모습. 연합뉴스
‘내년 4월 15일 총선은 어떨까. 현재로서는 절망의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나라가 재생하는 계기가 될지 회의적이다(…).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자. 절망의 선거지만 우리 국민 한 명 한 명이 깊이 고민해보자. 이 나라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동안의 관성을 버리고 곰곰이 따져보자.’ 사진은 28일 오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계속되고 있는 국회 본회의장 모습. 연합뉴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의 시 ‘담쟁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시를 읽다 보면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절망의 벽’을 수없이 넘은 한국 정치사가 떠오른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는 시구처럼 이 나라, 이 국민은 나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섰다.

4ᆞ19 학생의거, 5ᆞ18 광주민주화운동, 6ᆞ10 민주항쟁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였다면, 해방 이후 가난에 찌든 이 나라가 산업화를 통해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7개국의 일원이 된 것은 당당한 나라를 향한 치열함이었다. 그렇다, 감히 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위업을 이룬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런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반복되는 위기가 아니라 “이러다가 나라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정도로 외교ᆞ안보, 경제,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과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담쟁이 잎 하나가 수천 개 잎을 이끌고 절망을 넘었지만, 지금은 그런 리더십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담을 넘으려는 잎들을 끌어내리는 분열과 증오, 대립이 극심해지고 있다.

여야 정쟁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우려되는 것은 과거와 달리 민심을 의식하고 겉으로라도 떠받드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와대, 검찰, 여야 모두 노골적으로 자기 세력에만 집중하는 파당주의, 패권의식에 매몰돼 있다. 심지어 아베 정권이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을 때도 한목소리를 내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갈기갈기 찢어져 싸웠다. 아마 일본 극우세력들은 대한제국 말기 나라를 서로 팔아먹으려던 대신들을 떠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대로 주저앉는 것인가. 굳이 희망의 실마리를 찾자면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정국이 난마처럼 얽히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중대한 국면에서 선거는 묘하게도 단칼에 나아갈 방향을 정리해주곤 했다.

유신체제가 붕괴한 10ᆞ26 사태는 1년 전인 10대 총선(1978년 12월 12일)에서 신민당이 집권 공화당을 1.1% 앞선 결과가 원인이 됐다. 1.1%는 수치로는 작지만, 관권ᆞ금권 선거 속에서 야당이 승리한 것이었기 때문에 민심 이반과 독재체제 내부의 균열을 초래했던 것이다. 1985년 2ᆞ12 총선에서도 신민당 민한당 두 야당이 여당인 민정당보다 3.8%를 더 얻었고, 이 여파가 6ᆞ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박근혜 정권의 붕괴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5월 20대 총선에서 친박 공천 논란으로 압도적 우세를 다 잃고 패배하면서 급전직하, 탄핵 국면으로까지 치닫게 됐다.

그렇다면 내년 4월 15일 총선은 어떨까. 현재로서는 절망의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나라가 재생하는 계기가 될지 회의적이다. 지금 여야 정치권은 역사성은커녕 명분도, 메시지도, 포용력도 없이 무치(無恥)의 야비함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법만 해도 변형된 형태로 통과됐고, 이에 반발한 한국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의석을 더 차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아마 민주당도 비례의석을 더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위성정당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리 되면 민심이 의석 수에 반영되도록 하자는 선관위의 권고 취지는 사라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탐욕과 술수만 난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찾아보자. 절망의 선거지만 우리 국민 한 명 한 명이 깊이 고민해보자. 이 나라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동안의 관성을 버리고 곰곰이 따져보자. 그러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정말로 묵직한 선거 결과가 나와 이 나라 정치판을 확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간절하게 기대해본다.

편집인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