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讀古典] 사직단의 쥐(社鼠)

입력
2020.01.13 18:00
수정
2020.01.13 18:49
29면
쥐의 해를 맞이해 쥐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찾아보니 마음이 신산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庚)’이 들어간 해도 녹록지 않았다. 1910년 경술년에는 나라를 뺏겼고 1950년 경인년에 6ㆍ25, 1960년 경자년에 4ㆍ19, 1980년 경신년에 5ㆍ18이 있었다. ‘경’에서는 서늘한 칼날이 느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쥐의 해를 맞이해 쥐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찾아보니 마음이 신산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庚)’이 들어간 해도 녹록지 않았다. 1910년 경술년에는 나라를 뺏겼고 1950년 경인년에 6ㆍ25, 1960년 경자년에 4ㆍ19, 1980년 경신년에 5ㆍ18이 있었다. ‘경’에서는 서늘한 칼날이 느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열흘 뒤면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가 온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쥐에 관한 속담이나 이야기가 많은데 쥐가 들어간 성어만 몇 개 옮겨 본다. ‘수서양단(首鼠兩端)’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잔 머리를 굴리는 것을 말한다. ‘호두서미(虎頭鼠尾)’는 용두사미와 같은 뜻이다. ‘서간충비(鼠肝蟲臂)’는 원래 만물의 무상한 변화를 뜻했으나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서보(鼠步)’는 쥐가 살금살금 걷듯이 두려워하며 조심하는 것을, ‘서목촌광(鼠目寸光)’은 안목과 식견이 짧음을, ‘서기(鼠技)’는 비열한 수단을 의미한다. ‘로서출동(老鼠出洞)’은 우유부단 하거나 너무 조심하는 모습을 말한다. ‘십서동혈(十鼠同穴)’은 악인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일망타진하기 쉬운 것을 뜻한다. 정확한 통계를 낸 적은 없지만,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쥐는 대개 이미지가 안 좋다.

‘춘추(春秋)’ 성공 7년(BC584)에 이런 기록이 있다. “생쥐가 제사에 쓸 소의 뿔을 갉아먹었다. 점을 쳐서 소를 바꿨으나, 생쥐가 또 그 뿔을 갉아먹었다. 결국 소를 놓아주었다.(鼷鼠食郊牛角, 改卜牛, 鼷鼠又食其角, 乃免牛)”, 정공 15년(BC495)에는 “생쥐가 제사에 쓸 소를 물어뜯어 소가 죽었다. 점을 쳐서 소를 바꿨다.(鼷鼠食郊牛, 牛死, 改卜牛)”, 이듬해인 애공 원년(BC494)에도 “생쥐가 제사에 쓸 소를 물어뜯었다. 다시 점을 쳐서 다른 소로 바꿨다.(鼷鼠食郊牛. 改卜牛)”는 기록이 있다.

‘혜서(鼷鼠)’는 생쥐 중에 가장 작은 것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놈들은 사람이나 소와 말의 외피를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갉아먹는데 피해자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한다. 그놈들이 갉아 먹은 자리는 반드시 덧나는데 ‘춘추’는 나라의 제사에 쓸 귀중한 소를 망쳐 놓은 몹쓸 쥐들을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혜서식우(鼷鼠食牛)’, ‘혜서교우(鼷鼠咬牛)’라는 말이 나왔다. 암중에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음을 비유한다.

쥐를 본격적으로 정치 현실에 비유한 문헌은 ‘한비자(韓非子)’같다. 제나라 환공이 관중에 나라를 다스리는데 가장 염려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관중은 사직(社稷)터에 살고 있는 쥐라고 했다. 환공이 연유를 묻자 관중이 답했다.

“임금께서는 사직을 만드는 일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무를 세워 아름다운 색으로 칠합니다. 그런데 쥐 한 마리가 나무를 뚫고 들어가 그 속에 집을 짓고 삽니다. 불을 질러 잡자니 나무가 탈 것 같고, 물을 부어 잡자니 나무의 색이 상할까 봐 어쩌지 못합니다. 사직에 사는 쥐를 잡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지금 임금의 좌우에 있는 환관들은 밖으로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고, 안에서는 당파를 지어 임금을 이목을 가리고 기만합니다. 임금의 속내와 행동을 엿보고 외부에 알려주어 결탁하면서 자신들의 부를 축적합니다. 관리들은 처벌하지 않자니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고, 처벌하자니 임금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어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니, 바로 나라에 해를 끼치는 사직의 쥐와 같은 존재입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도 비슷한 애기가 나온다. 안자는 정치의 애로사항으로 사직단에 사는 쥐를 들면서, 쥐를 죽여 없애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사직단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쥐를 잡다가 사직단이 허물어질까 봐 처치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궁에도 사직단의 쥐 같은 존재가 있는데 임금 좌우의 신하들이라고 한다. 죽여 없애려 해도 임금의 비호를 받으니 뱃속에 들어가 있는 셈이라 사직단의 쥐와 같다고 말한다.

이렇게 남의 권세에 의지해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가리키는 성어가 ‘직봉사서(稷蜂社鼠)’이다. 사직단에 사는 벌과 쥐는 공격당하거나 불에 고초를 겪지 않는다. 쥐나 벌을 신성한 존재로 여겨서가 아니라 그들을 처치하다가 사직단이 피해를 볼까 걱정해서이다. 그들은 영리하게 둥지를 튼 셈이다. 이 말은 권세에 빌붙어 사는 모리배들을 비유하는 것으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온다. 비슷한 성어로 성황묘의 여우와 사직단의 쥐를 뜻하는 성호사서(城狐社鼠)도 있다.

어디 권력에 붙어 사는 쥐들만 있겠는가. 우리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갑질도 알량한 힘에 기댄 쥐들의 소행이 아니겠는가.

쥐의 해를 맞이해 쥐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찾아보니 마음이 신산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庚)’이 들어간 해도 녹록지 않았다. 1910년 경술년에는 나라를 뺏겼고 1950년 경인년에 6ㆍ25, 1960년 경자년에 4ㆍ19, 1980년 경신년에 5ㆍ18이 있었다. ‘경’에서는 서늘한 칼날이 느껴진다. ‘경’이 오행(五行)가운데 금(金)에 해당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경자(庚子)’를 풀어 보니, ‘경’이나 ‘자’나 모두 만만치 않다. 2020년 올 한해 나라 상황이 엄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우리 모두가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하겠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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