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악 무엇?] 온 동네 만능일꾼 피가로는 곧 비타민이다

입력
2020.01.29 04:40
수정
2020.01.29 09:1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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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제 TV광고 속 ‘세비야의 이발사’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지만 막상 무슨 노래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 음악, 그 음악을 알려드립니다.

2006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상영된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중 이발사 피가로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제공
2006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상영된 로시니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중 이발사 피가로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제공

‘비타민B1 성분이 황금비율로 구성된 고함량 비타민을 하루 1번 1알씩 먹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침ㆍ저심ㆍ저녁ㆍ밤마다... 훗!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최근 TV에 공개된 GC녹십자의 비타민제(비맥스 메타) 광고는 회의석상에 등장한 프레젠테이션처럼 간결하다. 알록달록한 배경화면에 비타민의 효능을 알리는 메시지만 보여줄 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한번쯤은 접해봤을 재미있는 이미지(이른바 ‘짤방’)를 삽입한 것도 파격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광고가 품은 비장의 카드는 귀를 잡아 끄는 배경음악(BGM)이다. 30초 분량 중 광고 막바지에 성우가 제품 이름을 짧게 읊는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대사도 없다. 광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오직 BGM 하나다. 광고 시작과 동시에 랩처럼 쏘아대는 남자 바리톤의 노래는 무엇일까.

바로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주제곡이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희극 오페라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가 만들어 1775년 처음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지금까지 명성을 누리게 만든, ‘대박’을 터트린 작품은 1815,16년 로시니가 만든 곡이다. 한국에선 1960년에야 무대에 올랐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18세기 스페인 세비야 지역을 배경으로 바람둥이 백작 알마비바가 미모의 여주인공 로지나를 유혹해 사랑을 얻어낸다는 줄거리다. 이발사 피가로는 백작이 로지나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매자 역할이다. 중간에 눈치껏 다리를 놓은 사람이니 재치 넘치고 수완이 뛰어난 팔방미인으로 묘사된다. 오페라 극 전반을 쾌활하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하다.

이런 피가로니까 당연히 극 초반에 자기가 얼마나 능력 있는지 뽐내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 제목도 ‘나는 거리의 만능일꾼(Largo al factotum)’이다. 가사 또한 ‘이발사로 산다는 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가’ ‘행운은 항상 내게 찾아온다’처럼 긍정적이고 힘찬 말들로 가득 차있다. GC녹십자 광고에 들어간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GC녹십자사의 비맥스 메타정 광고화면 캡처
GC녹십자사의 비맥스 메타정 광고화면 캡처

오페라 평론가 유정우 박사는 “그 시절 이발사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사람들 머리를 잘라줬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각 집안의 사정을 알게 되고 곧잘 해결사 역할까지 떠맡았다”며 “곡이 무척 빠른 건 해결사로서 피가로의 뛰어난 능력과 의기양양함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마을 대소사를 상쾌, 통쾌하게 챙기는 일꾼 피가로는 결국 우리 몸 신진대사에 활력을 불어넣는 비타민인 셈이다. 유 박사는 “속사포 같은 아리아가 광고의 빠른 화면 전환과 어우러져 분위기를 잘 살렸고, 가사 내용도 제품이 추구하는 목표와 부합해 광고음악으로선 적절한 선곡 같다”고 평가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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