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 조국은 어쩌다 노무현이 됐나

입력
2020.01.30 04:40
28면

<3>은유와 환유의 정치학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조국 장관을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10월 12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조국 장관을 수호하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정치에도 종종 문학적 비유가 사용된다. 대표적인 용례가 바로 정치포스터다. 이번 ‘조국 대전’에서도 은유나 환유를 활용한 다양한 포스터가 등장했다. 윤석열 총장을 조폭으로 묘사한 것도 있고, 5·18 진압군에 비유한 것도 있다. 그런가 하면 ‘윤짜장’이나 ‘검찰춘장’이라 비하한 것도 있다. 거기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노무현ㆍ문재인ㆍ조국을 성(聖)삼위일체에 비유한 포스터.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노무현의 꿈, 문재인의 운명, 조국의 사명.”

노무현ㆍ문재인ㆍ조국을 성(聖)삼위일체에 비유한 포스터. 진중권 전 교수 페이스북 캡처
노무현ㆍ문재인ㆍ조국을 성(聖)삼위일체에 비유한 포스터. 진중권 전 교수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검찰총장을 5·18 진압군에 비유한 포스터. 진중권 전 교수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검찰총장을 5·18 진압군에 비유한 포스터. 진중권 전 교수 페이스북 캡처

◇은유에서 이성으로

은유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은유란 “두 개의 다른 사물 사이에 불현듯 닮음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가령 그녀가 아름답다. 꽃도 아름답다. 그때 우리는 ‘그녀는 꽃’이라 말한다. 눈동자가 맑고 호수도 맑다. 그때 우리는 ‘그대의 눈은 호수’라고 말한다. 이렇게 은유는 한 사물의 속성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더 돋보이게 한다. 물론 은유는 사실이 아니다. ‘그녀가 꽃’이라는 말을, 우리는 그녀가 식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019년 5월 23일 고인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씨는 내놓은 미공개 사진 40여점 중 하나. 2007년 5ㆍ18 기념식을 마친 다음 날 무등산을 오르던 노 당시 대통령 부부와 문재인 비서실장이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2019년 5월 23일 고인의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씨는 내놓은 미공개 사진 40여점 중 하나. 2007년 5ㆍ18 기념식을 마친 다음 날 무등산을 오르던 노 당시 대통령 부부와 문재인 비서실장이 잠시 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예전에는 달랐던 모양이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서구인들은 ‘은유적 사유’를 했다고 한다. 은유적 사유에서는 ‘닮음’이 곧 ‘같음’의 증명이 된다. 가령 ‘남자의 턱에서는 풀이 자라고, 사슴의 머리에서 나무가 자란다’는 말이 있다고 하자. 여기서 ‘풀’과 ‘나무’가 우리에겐 그저 수염과 뿔을 가리키는 문학적 수사일 뿐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남자의 수염과 사슴의 뿔이 정말 식물성이라 믿었다.

실제로 중세와 르네상스의 약학에서는 간ㆍ쓸개ㆍ콩팥의 모습을 닮은 식물이 정말 그 장기에 좋은 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유사=동일’의 원칙에 기초한 이 은유적 사유는 17세기 이후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시절 유럽사회에는 새로운 합리주의적 사유가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령 고래는 물고기와 유사하나, 고래가 물고기는 아니잖은가. 오늘날 우리는 고래를 생김새가 전혀 다른 개와 함께 묶는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이 조국 당시 민정수석.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이 조국 당시 민정수석.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설 ‘돈키호테(1600)’는 유럽인의 사유가 은유에서 이성으로 이행하던 시기의 문학적 기록이다. 거기서 돈키호테는 ‘유사=동일’의 원칙에 따라 풍차를 거인으로, 양떼를 군대로, 여관집 소녀를 귀부인으로 여긴다. 은유를 현실로 착각하고 무용담을 살아가는 노기사는 소설 속에서 이미 시대착오로 가차 없이 비웃음 당하나, 바로 한 시대 전만 해도 이 광인이 서구인의 평균적 사유모드를 대표했다고 한다.

◇이성에서 은유로

조국 대전에 참전한 전사들을 지배하는 것이 이 돈키호테적 사유다. 그들에게 조국은 노무현ㆍ문재인ㆍ조국으로 이어진 진보신통기의 적통이다. 조국은 개혁의 기사, 그의 적은 검찰이다. 노기사의 눈에 풍차가 거인으로 보이듯이 그들의 눈에 검찰은 악마로 보인다. 풍차와 거인 사이에 닮은 점은 ‘크다’는 것밖에 없듯이 윤석열과 이인규ㆍ우병우(노무현 서거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장ㆍ중수1과장)의 닮은 점이란 ‘검사’라는 것밖에 없으나, 그들에겐 그것만으로 동일성의 충분한 증명이 된다.“노무현의 꿈, 문재인의 운명, 조국의 사명.” 전사들은 무용담을 산다. 그들은 개혁의 돈키호테를 도와 그의 사명을 함께 이루는 산초판자들. 노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그의 이루지 못한 꿈, 그 꿈을 대신 이뤄야 할 문재인의 운명, 그 과업을 이어 완수해야 할 조국의 사명. 그들의 이야기에는 슬픔ㆍ원한ㆍ복수, 회복되는 정의의 드라마가 있다. 이 은유적 착란 속에 신파는 현실이 되고, 조국은 졸지에 현생 노무현이 된다.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인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인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런 상황을 창조하는 데에는 자칭 ‘어용지식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조국일가의 수사를 노무현에 대한 이인규의 수사에 비유하며 거기에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웠다. 이렇게 조국일가의 수사에 노 전 대통령이 조사받던 치욕적 장면이 오버랩 되자, 풍차(윤석열)는 졸지에 거인(적폐세력)으로 둔갑했고, 이 마술에 홀린 산초판자들은 ‘조’키호테를 도우려 일제히 풍차가 있는 서초동으로 몰려갔다.

하지만 은유는 사실이 아니다. 고로 조국이 노무현일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라. 노무현은 누구처럼 학벌에 집착하지 않았다. 딸이 시험을 망쳐도 그는 “수학을 못해서 그렇지 좋은 딸”이라 말했다. 누구처럼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지도 않았다. 외려 가족의 잘못까지 자기가 뒤집어썼다. 누구처럼 저 하나 살려고 진보를 죽이지도 않았다. 자신은 죽어도 진보는 살려야 하기에 그 절망적 순간에 지지자들을 향해 ‘이제 나를 버리라’고 요구했다.

◇환유적 논증

조국을 노무현으로 둔갑시키는 데에는 ‘환유’ 역시 동원됐다. 원숭이 엉덩이가 바나나를 거쳐 백두산이 되는 노래는 이 환유적 상상을 잘 보여준다. 2018년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경선 때 친문 후보를 지지하던 문빠들이 경쟁자인 이재명 후보를 무차별 비방한 적이 있다. 그 짓을 말리는 내게 그들은 ‘찢 묻었다’고 했다. 성남시에 강연 갔다가 시장과 잠깐 면담한 적 있는데, 그새 이재명스러움이 내게 옮아 붙었다는 것이다.

앞서 포스터 속 진보신통기도 알고 보면 이 환유의 산물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친구, 조국은 다시 그 친구의 친구. 노무현의 꿈이 문재인의 운명으로 옮겨지고, 그것이 다시 조국에게 사명으로 옮아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세 인물 사이에 이렇다 할 공통성은 없다. 조국과 진중권이 친구라고, 어디 하나 닮은 데가 있던가. 조국ㆍ문재인ㆍ노무현의 관계란 실은 원숭이 엉덩이ㆍ바나나ㆍ백두산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말 “꿈”을 가진 정치가였다. 그에게는 저만의 철학과 비전이 있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원래 정치에 뜻이 없었다. 그에게는 그저 폐족이 된 친노의 복수와 복권을 위해 불려 나올 “운명”이 있었을 뿐이다. 조국 전 장관은 어떤가. 노무현을 닮기는커녕 그는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가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 왔다. 고로 그가 가졌다는 “사명”은 실은 노무현의 ‘꿈’과는 아무 관계없는 것이다.

은유와 환유로 빚은 세계에서 조국은 노무현이 되고, 윤석열은 우병우가 되었다. 하지만 조국이 노무현이 아니듯 윤석열은 우병우가 아니다. 외려 정치검사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게 윤석열이다. 그래서 그를 칭찬하기에 바빴던 그 입들이 이제는 그가 악마라고 떠들어댄다. 왜? 칼끝이 자기들을 향했기 때문이다. 부패한 권력이 ‘선’한 척 하려면 부패 잡는 검찰부터 ‘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조국이 맡았다는 “사명”의 실체였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수석과 오찬에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대화를 나누다 활짝 미소를 짓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수석과 오찬에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대화를 나누다 활짝 미소를 짓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막스 블랙의 은유이론

정치적 은유와 환유를 통해 부패한 권력은 노무현의 후광을 뒤집어썼다. 그 결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부패한 그들에 대한 수사를 곧 노무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게 됐다. 이것이 정치적 비유의 효능이다.

그들은 비유로 비리를 덮고 특권을 누리며, 개혁가라는 칭송까지 듣는다. 그 개혁의 일환으로 법무부에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했고, 신라젠의 주가는 뛰었다. 정권실세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던 곳이다.

분석철학자 막스 블랙에 따르면 은유의 효과는 교호적이다. 즉, ‘그대의 눈은 호수’라고 할 때, 그의 눈에 호수의 이미지가 겹쳐질 뿐 아니라, 거꾸로 호수를 볼 때에도 그의 눈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조국=노무현’이라는 은유도 마찬가지다. 그 은유는 조국에게 노무현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을 넘어, 거꾸로 노무현에게 조국 이미지를 덧씌우게 된다. ‘노무현’이라는 진보의 소중한 상징자산은 그렇게 더럽혀졌다.

문제는 이 일을 그 ‘어용지식인’이 ‘노무현 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재단의 공식채널을 통해 한다는 데에 있다. 굳이 그 일을 해야겠다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부패는 어느 정권에나 있으나, 이 정권은 한 가지 점에서 남다르다. 즉, 윤리의 기준 자체를 무너뜨려 아예 불법을 불법이라, 비위를 비위라 부르지도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하늘에 계신 노 전 대통령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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