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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태동 70년 ‘뉴 패러다임’]
1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소비자가전 전시회(CES) 2020' 야외 전시장에서 식물성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개발해 주목 받고 있는 음식 기술(Food Tech) 기업 임파서블 푸드 매점 앞이 고기 맛을 체험하기 위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맹하경 기자

‘생각하는 기계’의 성립 가능성을 논증한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의 1950년 논문에서 싹을 틔운 인공지능(AI) 개발의 역사는 올해로 70년을 맞았다. 인간을 닮아 지능적으로 행동하는 기계가 곧 탄생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개발 성과로 오래도록 부흥기와 시련기를 반복했던 AI 개발사는 1990년대 이후 머신러닝(기계학습)이란 획기적 방법론 등장으로 탄력을 받았다.

2020년 현재 AI 산업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수로서 인류 사회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 가전, 자동차와 같은 기계장치는 물론이고 게임, 음식, 수면, 성(性) 등 일상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그야말로 ‘AI 에브리웨어(everywhere·어디서나)’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소비자가전 전시회(CES) 2020'에서 인공지능(AI) 플랫폼 강자 아마존은 회사 부스를 소프트웨어 중심 전시관이 아닌 자동차 전시관 노스홀에 설치했다. 라스베이거스=맹하경 기자
◇첨단 AI 기술 격전지, 가전시장

가전은 AI 시장의 최전선이다. 소비자와의 접점이 넓고 생활의 편리와 직결된 품목인 만큼 첨단 AI 기술이 최우선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가전시장 대표 기업들의 신제품 경쟁이 얼마나 고도화된 AI 기능을 갖췄는지로 판가름나는 건 당연지사. 출시 넉 달 만에 15만대의 높은 판매고를 올린 삼성전자 ‘그랑데 AI’ 세탁기·건조기’의 경우 AI 스피커가 사용자의 작동 명령을 받아(음성인식) 세탁기에 전달하고(사물인터넷) 세탁기는 빨래가 얼마나 지저분한지 감지해(자동센싱) 자주 쓰이는 코스를 자동 실행하는(딥러닝) 과정에서 다양한 AI 기술을 활용한다.

사람의 말인 자연어를 이해하는 AI 스피커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순식간에 분석해 패턴을 익히는 머신러닝 기술이 빚은 대표적 기기다. 해외에선 아마존과 구글, 국내에선 SK텔레콤, KT 등 통신사와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 기업이 앞다퉈 제품을 내놓고 음성명령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초기엔 음악 재생, 알람 설정 수준이던 서비스 범위도 쇼핑, 음식 배달 등으로 확장되면서 ‘AI 비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연계해 다른 가전들의 ‘지능’을 깨우는 허브 기기로도 활용도가 커지고 있다.

◇수면ㆍ음식ㆍ섹스에도 침투한 AI

AI 기술은 기계와 같은 전통적 영역을 벗어나 적용 범위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임파서블 푸드’는 식품 분야에 AI를 들여와 세계적 주목을 받는 기업이다. 소고기 대체육 햄버거로 이름을 알린 임파서블 푸드는 올 초 식물성 돼지고기로 감쪽같은 고기 맛 구현에 성공했다. 차세대 식량 개발을 목표로 둔 이 기업의 ‘가짜고기’가 주목 받는 이유는 진짜 고기 맛의 구성요소를 AI 기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미 완성된 시스템을 역추적하는 기술)으로 분석하고 이를 대체할 최적의 재료와 합성법을 찾아내 퍽퍽하기만 하던 기존 가짜고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구현한 기술력 때문이다.

‘성 기술(Sex Tech)’ 산업도 AI 기술 경쟁에 합류했다. 이들 기업은 AI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해 여성용 섹스로봇, 바이러스 퇴치 및 예방 기기 등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AI의 빅데이터 분석은 제각기 다른 개인 취향을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만들어낼 때 그 능력을 톡톡히 발휘하는데, 이제는 성(性)에서도 개인형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수면의 질을 높이는 ‘수면 기술(Sleep Tech)’은 똑똑한 침대와 베개 생산에 이용되고 있다.

AI는 게임산업에도 침투했다. 음성으로 캐릭터를 조작하거나 이용자와 플레이를 같이 하는 AI 기술은 이미 여러 게임에 적용돼 있고, 이용자의 게임 능력이나 즐기는 패턴을 학습해 이에 맞춰 게임 구성을 자동으로 바꿔주는 AI 기술 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파이어는 게임산업 내 AI 시장 규모가 2019년 6억달러에서 2025년 13억달러로 연평균 8.4%씩 고속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자가전 전시회(CES) 2020'에서 인간처럼 대화하며 소통하는 삼성전자의 인공인간 '네온'이 소개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맹하경 기자
삼성전자가 만든 인공인간 ‘네온’은 인간의 표정과 몸짓의 미묘한 움직임을 학습해 실제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 제공
◇표정·제스처까지…진화하는 AI의 대화법

인간과의 원활한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AI 산업은 사용자경험(UX)을 다양하게 진화시키고 있다.

음성에 기반한 기존 ‘AI 비서’의 수준을 넘어섰단 평가를 받고 있는 삼성전자의 인공인간 ‘네온’이 대표적이다. 디스플레이 화면에 나타나 앞에 있는 사람과 실시간 상호작용하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컨셉의 서비스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웃으며 통화하는 모습은 기존 게임 캐릭터나 아바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람 형상과 흡사하다는 평가다. 네온을 개발한 프리나브 미스트리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전무는 “네온은 단순한 비서, 인터넷 인터페이스, 스피커가 아니다”며 “아직은 시험용 프로토타입 형태이지만 앞으로 네온을 통해 요가를 배우고 스페인어를 학습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토종 기업인 솔트룩스는 목소리와 표정, 자세를 자유롭게 바꾸는 의인화된 AI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과 대화하는 AI 개발이 목표인 솔트룩스는 유튜브, 트위터 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유명인의 말투와 음성을 똑같이 구현하면서 사람과 자유롭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기술을 개발했다.

전문가들은 AI가 올해를 기점으로 일상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전 영역에서 파급효과를 일으킬 거라고 전망한다. 이승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경제연구실 박사는 “AI는 인간의 ‘인식’을 모방하는 기술에서 벗어나 인간이 미처 하지 못하는 분석과 혁신, 나아가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창작활동까지 하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AI 기술이 추동하는 4차 산업혁명은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보다 더 큰 충격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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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전 전시회(CES) 2020'의 국내 기업 솔트룩스 부스에서 한 관람객이 가상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맹하경 기자
'소비자가전 전시회(CES) 2020'에서 솔트룩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캐릭터화해 만든 가상인간이 관람객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솔트룩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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