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목숨을 구했던 명이, 울릉산마늘

입력
2020.02.04 18:00
수정
2020.02.04 18:09
29면
울릉도 자생지에서의 울릉산마늘 무리(사진 국립수목원)
울릉도 자생지에서의 울릉산마늘 무리(사진 국립수목원)

많은 분이 좋아하는 나물 중에 명이나물이 있습니다. 쌈 싸서 먹기 딱 좋은 손바닥만 한 잎을 먹습니다. 연한 잎을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보통은 장아찌를 담가서 일년 내 곁에 두고 먹습니다. 맛도 독특하고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식용은 물론 약용으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식물입니다. 이 산마늘은 잎 모양은 달라도 우리들의 일상에서 즐겨 먹는 유명한 향신채, 10대 슈퍼푸드로 알려진 마늘을 시작으로 부추, 양파, 삼채 등과 같은 집안 식물이니 몸에 좋은 것은 당연하다 싶습니다. 게다가 보기도 좋아, 자생식물 중에는 이미 정원 소재로 성공했다고 알려진 두메부추도 있고 꽃꽂이 재료로 기간티움 알리움이라고 하는 어린아이 머리만 한 보라색 꽃차례를 가진 식물도 있지요.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에서도 이러한 가치에 주목하여 이들의 활용과 재배 기술에 대한 연구를 이미 시작했는데 관련 연구 동향들을 살펴보니 이미 연구 논문은 8,000건이 넘고 특허만도 수백 건에 이르더군요.

신종(新種) 기재에 사용된 울릉산마늘을 정밀하게 그린 도해도 (사진 국립수목원)
신종(新種) 기재에 사용된 울릉산마늘을 정밀하게 그린 도해도 (사진 국립수목원)

그 가운데 산마늘은 울릉도와 강원도 내륙의 일부 지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식물들을 면밀하게 조사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울릉도에 자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산마늘에 비해 백색의 꽃잎과 잎이 더 크고 넓으며 염색체도 2배체이며, DMA분석에서도 서로 다른 종,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울릉도에만 자라는 특산종인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울릉산마늘이라는 새 이름은 물론 학명에도 울릉엔시스(Allium ulleungense)를 붙이게 되었으니 참으로 멋진 성과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를 비롯한 여러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잎만으로도 울릉도와 내륙의 산마늘을 구분할 정도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변이 혹은 지역적 생육 환경의 차이라고만 생각하고 지나쳤었는데 이를 주목하고 제대로 심도 있게 파고들어 많은 식물학자의 꿈인 신종(新種)을 세상에 공표하게 된 것이지요.

울릉산마늘(왼쪽)과 산마늘(오른쪽)의 꽃과 잎의 비교(사진 국립수목원)
울릉산마늘(왼쪽)과 산마늘(오른쪽)의 꽃과 잎의 비교(사진 국립수목원)

식물들의 차이점들을 찾아내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한 집안의 유사한 식물들은 성분이 비슷하여 함께 활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신약 등을 만드는데 식물 종간에 중요 성분이 차이가 나기도 하고, 때론 같은 식물도 어디서 어떻게 재배하느냐에 따라 유효성분의 차이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산마늘이라는 식물이 오랫동안 동해바다 울릉도에 격리되어 적응하며 살아오면서 울릉 산마늘이 되기까지 만들어 낸 차이점은 이번에 밝혀낸 분류학적인 측면 말고도 새로운 자원으로의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비상에 걸렸습니다. 새롭게 알려진 변종 바이러스이고 치료제 개발이 어려워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울릉 산마늘의 별칭이 목숨 명(命)자를 써서 명이나물이 된 사연은 오래전, 울릉도로 이주한 주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된 위기에서 이 식물을 먹고 목숨을 구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촘촘하고도 치열한 시선으로 연구하여 이 의미 있는 식물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듯, 여러 연구자가 집요하게 주목하고, 끝까지 매달려 목숨을 구하는 바이러스의 치료제가 개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우리의 방역도 더욱 촘촘하게 대응하고 극복하여 안전한 명(命)의 유지와 일상으로의 회복이 빨리 이루어지길 고대해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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