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민의 美대선 이야기] 민주당의 자책골, 트럼프가 웃는다

입력
2020.02.09 18:00
29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상ㆍ하원 합동회의에 앞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상ㆍ하원 합동회의에 앞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지난 한 주는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선 2월 3일 월요일 첫 번째 경선이 아이오와에서 열렸으나 민주당이 개표 결과를 다음 날 오후 늦게 되어서야 발표하기 시작하는 ‘사고’를 쳤다. 2월 4일 화요일에는 신년 국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펠로시 하원의장과 볼썽사납게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2월 5일 수요일 연방상원은 작년 12월 연방하원이 통과시킨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시켰다.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민주당에 불리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큰 도움이 된 흐름이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미국 대선의 시작을 알리게 된 것은 1972년부터이지만, 그 후로 꾸준히 개혁의 표적이 되었다. 아이오와는 백인 인구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농업이 주요 산업 기반인데, 미국 전체의 특징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만큼 첫 번째 경선이라는 상징적 위상을 가지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지난주의 해프닝으로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큰 변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첫째, 바꾸려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같이 바꿔야 하지만 공화당은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둘째, 경선 시기와 방식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와 비공식적인 공조를 해왔는데, 뉴햄프셔도 개혁에 동참할 생각이 전혀 없다. 셋째, 개혁의 대안으로 어느 주를 첫 번째로 올려놓을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난주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의 가장 큰 수혜자는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을 조롱하기도 했거니와, 민주당 내부에서도 아이오와 코커스를 폄하하는 목소리가 있을 정도다. 사실 애초부터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는 주목받기 힘들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상원의 토론과 투표가 진행 중인데다, 하루 전날의 미식축구 슈퍼볼 이벤트와 바로 다음 날의 대통령 신년 국정연설 때문에 뉴스 거리가 넘쳐났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민주당이 아이오와 코커스를 스스로 망쳤다는 인상이 자리 잡았다.

민주당 내부로 좁혀서 생각해보면, 샌더스에게 불리하고 새로운 얼굴인 부티지지가 부상하는 효과는 있었다. 최종 개표 결과 자체는 두 후보 간 사실상의 무승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일반인들의 기억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개표 지연으로 화요일 오후 늦게 62% 개표된 결과를 처음 발표한 이후, 무려 이틀 동안이나 부티지지가 샌더스에게 의미 있을 정도로 앞서는 1등이었다. 개표 지연 해프닝 속에 나온 뉴스여서 주목을 더 많이 받기도 했다. 바이든과 전국적인 1위 다툼을 하고 있는 샌더스에게는 결코 호재가 아님에 틀림없다.

다만, 부티지지가 이번 결과를 모멘텀 삼아 민주당 후보가 되고 대선까지 승리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첫째, 부티지지는 주로 온건 중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블룸버그 후보가 슈퍼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경선에 뛰어들면 지지층을 나누어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하버드 대학 출신에 군 복무 경력이 있어 미국인들의 호감을 쉽게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동성애자라는 점이 본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하고 대선 후보가 된 후 실제 선거에서 승리한 경우는 많지 않다. 현역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한 경우를 제외하면 민주, 공화 양당을 합쳐서 총 16번 중 고작 세 번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은 내용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그 내용을 잊어버리게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연설 시작 전 민주당 펠로시 하원의장의 악수 제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매몰차게 거절하자, 연설이 끝난 후 펠로시 하원의장이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연설문을 찢어버린 것이다. 둘 다 관례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이었다며 비판받고 있지만 민주, 공화 양당의 지지자들에게는 상대방의 무례함이 더 크게 와 닿는 듯하다. 다만, 최근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이 상대 정당의 이러한 무례함을 더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즉 잠재적 트럼프 지지자들을 더욱 자극시켜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탄핵안이 연방상원에서 기각된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호재이다. 지난 몇 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이 추진한 대통령 탄핵안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제대로 결집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공화당 지지자들의 분노만 산 것처럼 보인다. 막판에 공화당 롬니 상원의원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소속 정당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에 찬성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 반향은 미미하다. 이 점을 민주당에서 추후 어떻게 활용할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원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한 주였지만, 앞으로의 일은 예측 불허이다. 2월 말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를 거치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크게 일어설 수 있을지, 그리고 샌더스와 부티지지가 얼마나 더 선전할지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 입가의 웃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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