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레터] 화천은 왜 ‘학대 논란’ 산천어 축제를 포기 못할까

입력
2020.02.12 07:00
수정
2020.02.1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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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민 먹여 살리는 효자 꼭 필요” vs “즐기기 위한 동물학대는 안돼”

전문가들 “축제 폐지가 아니라 동물 친화적 축제로 바꾸는 노력 필요”

2일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를 찾은 관광객이 맨손잡이 체험을 즐기고 있다. 화천군 제공
2일 강원도 화천 산천어축제를 찾은 관광객이 맨손잡이 체험을 즐기고 있다. 화천군 제공

#. 꽁꽁 언 빙판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낚는 산천어. 긴 기다림 끝에 입질이 느껴지면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힘겨루기를 이어가다 작은 구멍 사이로 산천어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 때쯤 쾌감에 추위도 잊게 됩니다. 잡은 물고기를 가족들과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배도 든든해지는 듯하죠.

#. 여기 핏빛 살육의 현장이 있습니다. 산천어는 맨손잡이 체험장에서 아가미가 찢기거나, 훌치기 낚시에 걸려 옆구리에 피를 흘리며 생을 마감해요. 두 번째, 세 번째 희생양이 나올 동안 산천어는 얼음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럽게 죽어갑니다. 이렇게 죽는 산천어는 1년에 약 76만 마리(181톤)에 달한답니다.

서로 다른 렌즈로 찍어본 화천 산천어축제 장면입니다. 누군가에겐 가족과의 즐거운 나들이 장소지만, 누군가에겐 잔혹한 학대의 현장으로 비치는 건데요. 지난 달 27일 축제의 막이 오르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동물학대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6일 기자간담회에서 “산천어축제는 생명을 담보로 한 인간 중심의 향연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작심 비판하고 나선 건데요. 이에 대해 16년 동안 화천군 홍보대사와 산천어축제 홍보대사를 지낸 이외수 작가는 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각종 흉기로 난도질 당한 화천군민 알몸에 친히 왕소금을 뿌리는 발언”이라고 반박하고 나섰죠.

매년 산천어축제를 둘러싼 논쟁은 되풀이되고 있는 건데요. 이 축제, 계속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0년 화천군이 처음 개최한 ‘낭천얼음축제’. 이 축제는 이후 화천 산천어축제의 모태가 됐다. 화천군 제공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2000년 화천군이 처음 개최한 ‘낭천얼음축제’. 이 축제는 이후 화천 산천어축제의 모태가 됐다. 화천군 제공

◇축제 맞아? 학살 아냐?

주민 2만 5,000여명, 전체 면적의 90% 이상이 산과 하천인 곳. 대한민국의 가장 작은 초미니 접경지역. 주민보다 군인이 더 많다는 화천의 모습입니다. 군사도시인 탓에 규제가 심해 변변한 사업기반이 없는 가난한 도시였죠.

침체한 경기를 살려보고자 시작한 것이 2000년 ‘낭천얼음축제’입니다. 얼음을 테마로 다양한 겨울민속놀이를 마련했는데요. 인근 축제와 별다른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해 주민들끼리 모여 즐기는 데 그쳤어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생각한 것이 산천어 낚시였습니다. 1급수에서만 산다는 물고기 산천어를 내세워 청정한 자연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재미까지 낚은 것이죠. 2003년 처음 열린 산천어축제는 22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모았습니다.

이후 축제는 빠르게 성장했어요. 2004년 58만명, 2005년 87만명으로 매년 관광객이 늘더니, 2006년에는 100만명을 돌파(103만명)했습니다. 2011년 미국 CNN이 ‘세계 겨울 7대 불가사의’로 소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최근까지 13년 연속 관광객 100만명을 넘어서면서 2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요.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겨울축제로 자리잡은 겁니다.

하지만 축제 규모가 커질수록 곳곳에서 문제 제기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동물권 단체들은 식용 목적이 아닌 오락을 위해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8조를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지연 동물해방물결 공동대표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축제를 위해 산천어를 5일 동안 미리 굶기고, 다른 산천어들 앞에서 죽이는 것은 동물보호법을 어기는 행위”라며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도 화천군은 어느 것 하나 고치지 않고 축제를 강행했다”고 비판했어요. 세계적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도 산천어축제를 두고 “오늘 같은 시대에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착취하고 고문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당연시된다는 것은 놀랍고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화천 산천어축제의 수상낚시터 모습. 따뜻한 날씨 때문에 얼음이 얼지 않아 올해는 얼음 낚시터 옆 수상 낚시터와 루어 낚시터 규모를 키웠다. 화천군 제공
지난달 27일 열린 화천 산천어축제의 수상낚시터 모습. 따뜻한 날씨 때문에 얼음이 얼지 않아 올해는 얼음 낚시터 옆 수상 낚시터와 루어 낚시터 규모를 키웠다. 화천군 제공

◇화천군은 억울하다고?

그렇습니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로서 그나마 산천어축제를 통해 지역경제를 꾸려가는데, 속사정 모르는 소리가 야속하게 들리나 봅니다. 화천 군민이기도 한 이외수 작가는 “자갈 구워 먹는 방법이나 모래를 삶아 먹는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다”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죠.

화천군에 따르면 지난해 산천어축제는 184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경제파급효과가 총 3,196억원(직접 1,300억원, 간접 1,896억원)에 달했습니다. 또 3,647명의 고용 효과를 가져왔고, 매년 65세 이상 노인 85명을 축제에 투입해 노인 일자리 제공에도 이바지하고 있다는 게 화천군의 설명입니다.

지난해 강원대 산학협력단이 지역 상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축제 기간에는 평소보다 고객이 51%, 매출액은 31.7% 급증했다고 해요. 축제 기간 1박 비율은 34%로 2018년보다 31.4% 높아졌죠. 화천사랑상품권, 농산물교환권 등 상품권 사용량도 2018년 25만 8,693매에서 2019년 29만 5,775매로 늘어났습니다.

올해 재정 자립도 8.8%로 열악한 상황에서 산천어 축제는 지역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죠. 그래서 화천군에서는 산천어축제를 두고 ‘1년 농사나 다름없다’ ‘축제 하나로 먹고 산다’라는 말을 한답니다. 충남 보령머드축제의 김기정 연출감독은 “화천에는 축제에 생계가 걸려 있는 군민이 많다”며 “단순히 동물학대 여부만 따질 것이 아니라 경제적 효과와 가치 등을 고려해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했어요.

자료: 화천군
자료: 화천군

◇올해는 유난히 더 힘들다면서?

그렇습니다. 축제 개최 과정부터 험난했는데요. 동물권 단체가 지난달 9일 최문순 화천군수 등을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한 겁니다. 또 포근한 날씨 때문에 개막을 두 차례나 연기하기도 했죠. 1월엔 폭우로 행사장이 물바다가 돼 물을 퍼내느라 관계자들이 진땀을 빼기도 했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27일 문을 열었지만, 이번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복병으로 등장했습니다. 주최 측은 축제장 입구에서 열 감지기로 체온을 측정하고 손 소독제, 마스크를 배치하는 등 방역 조치에 들어갔죠.

화천군은 신종 코로나 관련 무분별하게 퍼지는 가짜뉴스에도 칼을 빼 들었습니다. 축제에 대한 허위 내용을 발견하면 법적 책임을 묻기로 한 겁니다. 앞서 5일 지역에서 50대 여성이 발열 증세를 보이긴 했으나,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해요.

하지만 주최 측의 한 관계자는 11일 “정확한 수치를 알기는 어렵지만 예년에 비해 관광객 수가 줄어 다들 고민이 많다”며 씁쓸해했어요.

◇그래서 축제를 폐지하라고?

지난달 27일 개막한 화천산천어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빙판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있다. 화천군 제공
지난달 27일 개막한 화천산천어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이 빙판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있다. 화천군 제공

그렇지는 않아요. 동물권 단체들은 “축제를 폐지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생명을 존중하는 동물친화적ㆍ생태적인 축제로 거듭나라는 거죠. 이지연 대표는 “궁극적으로 맨손잡이 등 동물을 학대하거나 착취하는 프로그램을 없애고,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원한다”며 “이를 위해 우리는 언제든지 도울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껏 산천어축제가 처벌 받지 않는 이유는 동물보호법에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동물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에 해당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동물권 단체들은 산천어축제 처럼 동물을 체험의 도구로 쓰는 것은 식용이 아니라 재미가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설사 식용으로 치더라도 동물들이 가능한 덜 고통 받도록 법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 화천군은 문제 의식조차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류도 통증과 공포를 느낀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거든요.

화천군에서는 빙어축제도 있고 송어축제도 있는데, 왜 우리만 괴롭히냐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옵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이 2013~2015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동물을 주제로 한 축제는 전국에 86개나 된다고 해요. 그러나 이 대표는 “산천어축제는 오래됐고 가장 대표적이기 때문”이라며 “축제의 성공으로 우후죽순 가학적인 동물축제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했어요. 제일 잘 되니까 제일 공격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죠.

◇그럼 이 축제, 어떻게 하면 될까

국제 해양생물보호단체 시 셰퍼드가 2015년 공개한 페로제도 ´그라인다드랍´ 행사에서 자행되는 고래 학살 모습. 시 셰퍼드 영상화면 캡처
국제 해양생물보호단체 시 셰퍼드가 2015년 공개한 페로제도 ´그라인다드랍´ 행사에서 자행되는 고래 학살 모습. 시 셰퍼드 영상화면 캡처

지역 축제 전문가들은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하지 않고 축제를 꾸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가공ㆍ조리 된 먹거리를 전시하고 파는 형식의 단조로운 행사는 관광객을 유치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김기정 감독은 “얼음 위에서 손맛을 보는 재미로 축제를 찾는 것인데, 얼음도 없고 낚시도 못하고 구경만 하는 행사라면 누가 가겠나”라고 지적했어요.

서울 장미축제 등을 연출한 문화기획가 류재현 감독은 “동물학대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논리라면 평소 운영되는 실외 낚시터나 낚시 카페, 수산물 시장들도 다 문제가 된다”며 산천어축제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이들 전문가들도 좀 더 생태적인 축제로 보완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말해요. 류 감독은 “어차피 축제를 오랫동안 진행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지자체나 관계 기관들이 좀 더 동물 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연구ㆍ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며 “그런 인식의 전환이 오히려 동물을 사랑하는 새로운 방문객들까지도 더 오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동물학대 논란에 기후 변화로 인한 개최 연기까지, 산천어축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하지만 산천어의 죽음에도 존중은 필요하겠죠. 지자체가 변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데요. 올해 행사는 16일까지 계속 됩니다.

☞여기서 잠깐

해외의 동물학대 논란 축제는?

해외 다른 축제에서도 동물학대 논쟁이 치열합니다. 북대서양에 위치한 덴마크령 페로제도에서는 수백 년간 이어온 전통으로 매년 수백 마리의 고래를 학살하는 ‘그라인다드랍’ 행사가 열려요.

여러 척의 어선이 참거두고래를 해안가로 몰면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뭍으로 고래를 끌어내 칼과 작살로 도살합니다. 이렇게 죽은 참거두고래는 연 평균 800마리에 달한답니다. 사냥 후 고기와 지방은 주민들이 나눠가지고, 남는 것은 해변에 그대로 버려져요. 동물권 단체가 매년 바다가 핏빛으로 물든 장면을 공개하며 멈추기를 촉구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국내 법을 지키며 운영 중이라고 반박하고 있죠.

스페인 마드리드 메디나첼리에서 열리는 ‘토르 드 주빌로’라는 축제에서는 살아있는 소의 뿔에 불을 붙입니다. 황소의 뿔에 불을 붙이고 공포에 질린 소가 불이 꺼질 때까지 뛰어다니면, 사람들이 이를 피해 달아나는 술래잡기 행사인데요. 400년간 이어진 전통으로 매년 11월이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1,500명의 관광객이 모인다고 해요. 전통이냐, 악습이냐는 논란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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