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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족이 나서야 움직이는 사회
고(故) 권대희씨의 모친 이나금씨가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 자택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아들의 억울한 죽음, 납득할 수 없는 검찰 수사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쪽 모니터에 뜬 화면은 권씨가 과다출혈을 일으킨 수술실 내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이씨가 직접 입수한 것이다. 그는 “500번 이상 영상을 보면서 의미가 있어 보이는 순간을 모조리 기록한 뒤 증거로 냈다”며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른바 권대희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단 한 건의 의료사고라도 예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배우한 기자

지난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제522호 법정. 2016년 9월 8일 서울 강남의 A병원에서 안면윤곽 성형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로 중태에 빠져 49일 후 숨진 고(故) 권대희(당시 25세)씨 사건 관련 첫 형사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A병원 원장을 비롯한 의사 3명, 혐의는 업무상 과실치사 및 의료법 위반(의무기록지 허위 기재)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5개월 만이었다.

검사가 공소사실 낭독을 시작하자 방청석에 있던 권씨 모친 이나금(60)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을 허망하게 잃은 슬픔을 애써 참느라 ‘조용히’ 흐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초조해 보였다. 사고 당시 간호조무사의 단독 지혈 조치, 곧 병원 측에 큰 타격을 주게 될 무면허 의료행위 부분이 공소사실에서 제외된 탓이다. 이씨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검찰이 솜방망이 처벌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이씨는 기자를 만나 “의사들이 처벌 강도가 세지 않은 과실치사죄는 별로 겁내지 않는다고 한다”며 “작년 11월 내려진 서울중앙지검의 결론에 동의할 수 없어 서울고검에 항고장을 제출해 둔 상태”라고 밝혔다.

◇증거 직접 수집하며 ‘2차 고통’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을 완전히 치유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유족이 직면하게 되는 고통은 또 있다. 다름 아닌 법정 투쟁이다. 죽음을 낳은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민ㆍ형사소송이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파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엄연한 현실인 ‘가족의 죽음’을 자꾸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는데, 기대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소송 결과는 또 다른 상실감을 낳는다. ‘법의 장벽’이 너무나 높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권씨 모친 이씨의 경험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5월 권씨 유족은 A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4억3,000여만원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법원은 A병원 측의 배상 책임 범위를 80%로 정했다. 피해자(환자) 측에 입증 책임이 있는 데다 고도의 전문지식도 필요해 ‘기울어진 운동장’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불리는 의료사고 분쟁에 있어, 병원의 배상 책임을 대폭 인정한 이례적 판결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씨는 수없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결정적 증거인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과 의무기록지를 입수한 인물은 이씨였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수술 집도 의료진과 37일간에 걸쳐 나눈 전화 통화 녹취록도 직접 작성했다. 특히 차디찬 수술대 위에 누워 피를 흘리는 아들의 모습이 담긴 7시간 30분짜리 CCTV 영상은 무려 500번 이상 봤다. 성인 남성의 체내 혈액 총량이 통상 5,000㏄ 정도인데, 권씨의 출혈량은 3,500㏄에 달했다. “처음엔 무서워서 아예 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다 한 달 후쯤 결국 영상을 재생했는데 기겁을 했죠. 한동안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됐어요.” 이씨는 ‘진실을 밝혀 보자’는 생각에 이성을 되찾고 CCTV 화면 분석에 나섰다고 했다. ‘2차 고통’을 감내한 셈이다.

게다가 형사소송은 이씨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었다. 일단 수사가 지나치게 오래 진행됐다. 경찰 수사에만 22개월이 걸렸고, 검찰은 사건 송치 후 1년이 지나도록 최종 결론을 내놓지 않았다. 이씨는 “검찰은 자꾸 ‘바쁘다’는 핑계를 댔고,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하며 수사를 지연시켰다”고 말했다. 아들을 사망케 한 의사들이 과연 제대로 처벌을 받을지 지켜보느라 부모는 3년 이상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무면허 의료행위 아니라니…” 분통

그렇다고 수긍할 만한 결론이 나온 것도 아니다. 권씨 사망 이후에도 A병원은 종전과 같이 ‘14년 무사고’ 광고를 계속 홈페이지에 올렸다. 의료법상 불법인 허위광고였다. 유족의 신고로 2017년 10월 제재 처분이 가해졌지만 벌금 100만원에 영업정지 3개월을 대신한 과징금 4,050만원 부과가 고작이었다. 심지어 병원 측은 2018년 12월에도 또다시 해당 광고를 버젓이 내걸었는데, 검찰은 이를 문제 삼지 않고 각하 처리했다.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였지만, 이씨는 “문제의 광고는 아들이 A병원을 택한 결정적 계기였다는 점에서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것”이라며 검찰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말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서 이씨가 가장 분통을 터뜨린 대목은 ‘무면허 의료행위’가 공소사실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CCTV 화면에는 권씨의 출혈이 계속되던 때, 의사 없이 간호조무사 혼자서 지혈 조치를 취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씨는 “수술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지혈이 안 되는 환자를 간호조무사한테만 맡기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2018년 9월 경찰 문의에 “일반적 수술보다 출혈이 많은 상황에서 수술 부위에 대한 지혈술은 의사가 직접 수행해야 할 의료행위”라며 “간호조무사가 이를 수행하는 건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답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여러 전문 감정기관들도 비슷한 취지의 감정의견을 냈다.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이 부분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 판단은 정반대였다. ‘의사의 지시ㆍ감독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권씨 지혈은 의사만 할 수 있는 고도의 의료행위가 아니다’ 등의 이유를 들어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와 의사들의 교사ㆍ방조 혐의를 모두 불기소 처분한 것이다. 의료진에게 적용된 업무상 과실치사죄(형법 268조)의 형량은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어서 병원의 영업활동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무면허 의료행위(의료법 87조)의 경우, 당사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이를 교사ㆍ방조한 의사는 ‘1년 이내 의사면허 정지’가 가능하다. A병원으로선 훨씬 더 실질적이고 치명적인 처벌을 피한 셈이다. 이씨가 ‘면죄부 수사’라는 의심을 거두기 힘든 이유다. 공교롭게도 권씨 사건 담당 검사와 A병원 측을 대리한 변호사는 같은 대학 의학과 동기동창이자, 사법연수원 기수도 동일하다. 이씨는 “석연치 않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권력이 2, 3차 가해를 하는 것으로 느껴졌다”면서 울먹였다.

지난달 18일 부산 해운대구 자택에서 만난 윤기현씨가 만취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아들 창호(오른쪽 액자)씨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부산=왕태석 선임기자
◇사과보다 ‘자기방어’ 몰두하는 가해자

다른 유족들이 겪는 상황도 비슷하다. 2014년 1월 23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숨진 전예강(당시 10세)양의 가족은 6년이 흐른 지금도 힘겨운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2017년 10월 1심에서 패소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형사처벌도 진료기록 허위기재 혐의로 기소된 수련의(인턴)가 1심에서 받은 100만원의 벌금형이 전부다. 예강이 엄마 최윤주(44)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비할 순 없지만, 소송을 통해서도 상처를 받았다”며 “1심에서 졌을 때 좌절감이 밀려왔던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소송 과정에서 사죄보다는 ‘자기방어’에 힘을 쏟는 가해자를 계속 마주하는 일도 고통스럽다. 윤창호(2018년 11월 9일 사망, 당시 22세)씨의 부친 윤기현(54)씨는 아들을 앗아간 음주운전 사고 운전자에 대한 재판이 열린 법정을 수차례 찾았다. 윤씨는 “가해자 얼굴을 본다거나, 변호인들의 말을 들을 때 많이 힘들었다”고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심지어 윤씨는 진정성 있는 사과도 받지 못했다. “저라면 문전박대를 당하더라도, 물벼락을 맞더라도 피해자 유족을 계속 찾아뵙고 용서를 구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가해자 측은) 얼굴 한번 비친 적이 없습니다. 법정에서 바라본 가해자 얼굴에서도 반성의 기미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런 탓인지 가해자에 대한 ‘징역 6년’ 확정 판결과 관련, 윤씨는 “언론에선 ‘중형이 선고됐다’고 했는데, 한 줌의 재가 돼 버린 우리 아들에 비하면…”이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음을 계기로 생긴 법(안)들. 그래픽=강준구 기자

물론 가해자가 엄한 처벌을 받거나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다 해도, 세상을 떠난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유족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2016년 4월 어린이집에 갔다가 차량 사고가 났는데도 응급조치가 신속히 취해지지 않아 끝내 사망한 이해인(당시 4세)양의 아빠 이은철(38)씨는 이렇게 말했다. “가해자에겐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만 선고됐어요. 해인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누가 딸을 죽였는지는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가해자는 없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어요. 이게 현실입니다.” 고인의 넋을 달래고 유족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고자 법에 호소했지만 피해 회복은커녕 절망감만 안겨 준, 이 사회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일갈이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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