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나는 고발한다’ ‘나를 고발하라’

입력
2020.02.1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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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교수를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SNS에서 '민주당만_빼고', '나도 고발하라'는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만 빼고’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교수를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SNS에서 '민주당만_빼고', '나도 고발하라'는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1898년 1월13일자 프랑스 일간지 로로르(L’Auroreㆍ여명)는 1면을 털어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 글에서 4년 전 간첩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유대계 알프레드 드레퓌스 육군 대위의 결백을 주장했다. 진짜 간첩이 밝혀졌는데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진실을 은폐하는 군과 법원을 고발하며, 졸라는 “말을 하는 게 나의 의무”라고 썼다. 그 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영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러나 드레퓌스 재심 청구 운동은 활활 타올랐다. 에밀 뒤르켐, 마르셀 프루스트, 클로드 모네 등 학자 예술인 과학자 학생들이 침묵하지 않고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는 1906년 무죄가 인정돼 복권됐다.

□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가 보불 전쟁에서 패한 후 보수 가톨릭 세력을 중심으로 강한 국가와 군, 반유대주의 주장이 고조된 분위기에서 불거졌다. 반작용으로 개인의 자유와 인권, 정교(政敎)분리를 옹호하는 진보 세력이 결집하고, 시오니즘 운동이 촉발돼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졌다. 그 반전이 졸라의 격문에서 시작했다. ‘나는 고발한다’는 지식인의 양심과 용기, 펜의 힘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남았다. 법정에서 “프랑스가 자신의 명예를 구해 준 내게 감사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한 졸라의 예언도 사실이 되었다.

□ 임미리 고려대 교수가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고발되자 ‘나도 고발하라’며 민주당의 고발장 제출을 문제삼는 학자와 논객들이 줄을 이었다. 학자의 양심과 언론 자유에 검찰 수사로 재갈을 물리려는 발상이 공당에서 나왔다는 사실부터 믿기 어렵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권의 자기 부정이다. 상이한 의견에 대한 존중, 자유로운 비판의 허용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는 믿음은 정치적 성향에 우선한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거센 역풍에 민주당은 14일 고발을 취하했다. 그러나 ‘나도 고발하라’는 민주당의 오만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회자될 터다. 졸라 같은 지식인이 권력의 압력에 맞서 지켜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권 이익보다 가벼이 여긴 오만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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