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향(香), 이집트에서 출발한 기나긴 여정

입력
2020.02.20 04:30
31면
이집트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향을 동아시아에 전달한 주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고대인도의 최고 히트상품인 불교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집트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향을 동아시아에 전달한 주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고대인도의 최고 히트상품인 불교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에게 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찰이나 제사 정도가 아닐까? 전통종교 의례에서 언제나 절이나 잔보다 먼저 등장하는 향. 그러나 향은 동아시아의 전통문화가 아닌 외래문화의 유입이라는 것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향은 사실 무더운 문화의 산물이다. 에스키모와 같은 분들에게 향이 필요할까? 물론 없는 것보다는 좋겠지만, 냄새가 적은 곳에서 향은 필수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같은 이유로 기후대가 다소 추운 우리나라나 중국의 화북지방에서도 향의 필연성은 크지 않았다.

향으로 신을 공경하는 최초의 행위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 이집트의 신관들은 ‘모든 것을 가진 신에게 보잘것없는 인간이 바쳐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 소시민이 재벌에게 마땅히 선물할 물건이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니 이것보다 신과 인간의 격차는 훨씬 더 크다. 결국 신관들은 궁리 끝에 신들도 좋은 향기만큼은 기뻐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이 일류가 향을 올리게 된 첫 종교의례의 시작이다.

왜 이집트에서는 하필 향에 주목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처한 기후가 무척이나 무덥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는 제아무리 씻어도 땀과 냄새를 없앨 수 없다. 이런 환경이 향의 가치를 촉진하고, 결국 신에게 올리는 최고의 공양물이 되도록 한 것이다.

현재에도 이집트의 제2도시인 알렉산드리아의 향은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그런데 이 향은 향수가 아닌 향유(香油)다. 무덥고 건조하다 보니 향수는 금방 증발해 향유의 필연성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인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붓다는 탄생하자마자 향유로 씻겨졌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의 양귀비가 향 주머니인 향낭을 찬 것과 달리, 이집트와 인도는 향유를 이용해서 아로마 마사지를 하는 것 같은 전통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도 향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예수의 탄생 때 등장하는 동방박사의 예물에 유향과 몰약이 그것이다. 유향은 유향나무에 상처를 내 채취하는 수액 향이다. 색깔이 하얗게 응고되기 때문에 염소젖 색과 같다고 해서, 유향(乳香) 즉 젖향이라고 부른다. 몰약 역시 몰약나무에서 채취하는 수지류의 향이다. 유향과 몰약 역시,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경배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럼 이집트에서 인도로 연결되는 향을 동아시아에 전달한 주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고대인도의 최고 히트상품인 불교다. 인도의 향 문화가 불교를 타고 동아시아까지 매료시킨 것이다.

‘삼국유사’ ‘아도기라’에는 동아시아의 향 전래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남조의 양나라에서 신라 눌지왕 때 향을 보내 왔는데, 조정에서 그 용도를 아무도 몰라 이를 전국적으로 수소문하게 했다. 이때 불교를 전파하러 신라에 온 묵호자가 ‘이것은 향인데, 불에 사르면 향기가 강해서 그 정성이 신성(神聖)과 통한다. 신령한 대상은 붓다가 최고니, 향을 사르고 발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 하였다. 당시 왕실에 중병을 앓던 왕녀가 있었는데,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사르고 기도케 하니 완치되었다.

이 기록은 신라 전통에는 향이 없었고, 중국 양나라의 보살천자 양무제가 향을 전래했음을 알게 한다. 또 묵호자(墨胡子)는 ‘검은 옷을 입은 외국 선생’이라는 의미로 외국인 승려를 가리킨다.

그리고 향이란, 신성과 통하는 일종의 메신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는 이집트의 향 문화와 유사하다. 즉 고대 이집트의 향 전통이 불교를 타고 우리에게까지 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 향은 우리를 깊이 매료시키며, 모든 종교의식의 첫머리를 장식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향이야말로 가장 우리화된 외래문화는 아닐는지...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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