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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범고래의 다른 색깔. 남극에서는 규조류가 붙어 노란색을 띠는 반면 따뜻한 바다에서는 흰색의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저작권 John Durban, NOAA)

뜨뜻미지근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을 알리는 비가 촉촉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습니다. 나뭇가지의 겨울눈이 터지고 보드라운 연초록 잎이 빠금히 세상을 향해 나옵니다. 난데없이 크게 터져버린 질병으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는 있습니다만, 그래도 봄입니다.

이번에는 난데없이 고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45억년 역사에서 인간이 알았던 가장 큰 동물이 고래지요. 육지에서 바다로 되돌아간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이주를 하는 동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여름에는 저위도에서 새끼를 키우고, 겨울에는 추운 바다로 이주하여 먹이를 먹습니다. 흔히 새끼 낳고 키우기에는 따뜻한 환경이 적합하기에 열대지방으로 이동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왜 먼 거리를 이주하는지 사실 명확하지 않습니다. 최근 논문에 따르면 미국과 이탈리아 연구자들은 2009년부터 8년간 62마리 범고래를 추적하였지요. 추운 남극 해역에서 먹이를 먹는 네 그룹 모두 1만1,000㎞를 왕복 이주했습니다. 대부분 매우 빠르게 주로 남북 방향으로만 직진했죠. 이 과정에서 남극에서 새로 태어난 새끼들도 촬영했는데, 범고래들이 출산 때문에 따뜻한 물로 이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범고래들은 왜 이 먼 거리를 먹이도 안 먹고 이동을 할까요? 연구자들은 남극해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범고래들의 피부 변색에 주목했습니다. 극지방에서는 체온 유지를 위해 피부 혈류량을 줄이며 결국 피부세포 재생과 각질박리(마치 우리가 때를 벗기는 것처럼)가 줄어듭니다. 이때 규조류 같은 식물 플랑크톤이 들러붙고, 피부 변색을 일으킵니다. 규조류가 붙은 피부 때에는 유해 세균이 증식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바다에서는 피부에 혈류를 보낼 수 있고, 이는 피부 재생과 각질을 박리시킬 수 있어 보다 건강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흰고래로 알려진 벨루가에서도 보입니다. 따뜻한 강어귀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벨루가는 번식도, 먹이를 먹는 것도 아니고 피부 갈이를 하는 것이었죠.

어쩌면 이 범고래들은 더 이상 남극으로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먹어야 할 물범이, 그 물범이 먹어야 할 펭귄이 사라지고, 펭귄이 의존하는 크릴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릴은 지난 50년간 80%가 절대적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줄고 있지요. 남획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제 기후변화라는 문제까지 도사리고 있습니다. 크릴의 주 먹이원은 빙하 밑에서 서식하는 조류(藻類)입니다만 빙하가 줄어들고, 조류의 양을 감소시켰습니다. 빙하 밑은 크릴 유생들의 피난처로 활용되며 성장기까지의 생존터입니다. 펭귄과 물범들 수는 감소하고, 다시 고래는 남극을 찾지 않을 수 있습니다.

17년 전의 사스, 11년 전 신종플루, 4년 전 메르스. 그리고 지금의 코로나19. 수없이 이러한 사전 경고를 들었어도, 우리 행태는 변하지 않아 왔습니다. 잠시 멈칫하다가도, 도로 그 익숙한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생태계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일겁니다. 다만 그 차이는 규모겠지요. 다시 한번 지구 환경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우리가 내 자식을 위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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