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설정

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을 ‘빅데이터의 시대’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수많은 정보가 데이터로 축적되는 환경 때문이다. 오늘 아침 들른 장소부터 페이스북 ‘좋아요’까지 이용자의 사소한 행동과 취향마저 데이터가 되고, 그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해 내는 것이 빅데이터 기술이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 요소요소가 모두 데이터화 가능한 세상이라면, 현재도 진행형인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데이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자 기술을 접목하려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의술이 백신 개발에 주목했다면, ICT 기업들은 ‘위치정보’ 데이터에 주목했다. 사람과 ICT 서비스가 항상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위치정보 빅데이터를 활용한다면 감염자 또는 감염국 방문자의 경로를 파악할 수 있고, 이를 시스템화하면 감염 확산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란 기대였다.

국내에서 처음 감염병 확산 방지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한 시점은 2016년이다. 2015년 우리가 겪은 뼈 아픈 현실이 계기가 됐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감염된 1호 확진자가 입국한 뒤 메르스 확산 종식까지 69일 동안 확진자 186명, 사망자 38명이 발생했다. 1호 확진자가 사우디아라비아(감염국)가 아닌 청정국이었던 바레인을 경유해 귀국한 데다, 공항 게이트 내 열 감지 카메라나 ‘옐로페이퍼(건강상태 질문서)’에 의존하는 수동적 검역 방식의 구멍으로 확진자 조기 파악에 실패했고 입국 후 국내 동선 파악도 법적 근거 미비로 지체됐다.

감염자 통제 제약이 초기 대응 실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자 KT가 위치정보를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2017년 SK텔레콤, LG유플러스도 합류해 통신 3사와 정부가 위치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개발됐다. 통신사가 국내 가입자 이동 경로를 정부에 빠르게 제공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추진됐다.

2018년 메르스가 다시 발병했는데, 이때는 확진자 1명에서 추가 확진자나 사망자 없이 38일 만에 종식됐다. 2015년과 달리 2018년에 빠르게 투입된 정보는 바로 국외 동선을 파악하는 ‘로밍 데이터’와 시간대별 국내 위치를 알 수 있는 ‘휴대폰-기지국 통신 데이터’다.

로밍 정보를 활용한 감염병 확산 방지 플랫폼 개념도(왼쪽)와 스마트폰 위치정보 수집 방식. 그래픽=박구원 기자
◇당신의 위치, 기지국은 알고 있다

확진자 국내 동선 확인이 필요하면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경찰서를 통해 통신사에 위치정보를 요청하게 된다. 통신사는 확진자 휴대폰 식별번호와 기지국 사이 통신 기록으로 휴대폰 사용자가 몇 시에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 위치정보를 추출한다.

휴대폰은 꺼져 있거나 비행기 모드만 아니라면 근처 기지국과 수시로 통신을 주고 받는다. 언제든 전화를 송수신하거나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기지국이 신호 연결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하더라도 곧바로 인근 다른 기지국과 연결된다. 도심은 보통 50~200m, 지역 도시는 200~300m, 사람이 드문 외곽 지역은 500m~1㎞ 간격으로 기지국이 있다. 통신사 서버에는 휴대폰 기기 식별번호와 기지국 정보가 기록돼 있기 때문에 시간대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국경 넘는 위치정보 기록하는 ‘로밍’

외국에 있는 사람의 위치는 로밍 데이터로 파악된다. 국내 통신사 가입자가 해외로 나가면서 로밍을 이용하면 해외 통신사는 이 가입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해도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국내 통신사와 정보를 공유한다. 가입자가 어떤 국가에서 무슨 통신사 네트워크에 접속하는지 국내 통신사에 전달된다.

감염병 사태가 발생하면 이 정보가 질본과도 공유된다. 가입자가 질본이 지정한 감염병 위험국가에서 로밍 접속한 기록이 확인되면 통신사는 가입자 이름과 생년월일, 출국일, 방문국 등을 질본에 실시간 전달하고, 동시에 가입자는 감염국과 감염병에 대한 정보, 예방법 등을 문자로 안내 받는다. 이 가입자가 입국할 때도 입국일, 입국 전 방문한 국가 정보가 질본에 보고되며, 가입자에게는 감염병 정보와 신고 요령 문자가 발송된다.

청정국을 경유해 입국하더라도 감염국 방문 여부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개인도 문자 안내를 통해 발병 증세, 위험성 등에 대한 정보를 더 확실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게 수동적 검역 방식과의 차이점이다. 실제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한국으로 이동한 2018년 메르스 1호 확진자는 감염병 위험 지역이었던 UAE를 방문했을 때와 귀국한 즉시 메르스 위험성과 증상, 신고 방법을 설명하는 문자를 받았고, 귀국과 동시에 검역당국에 이를 알려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1호 확진자와의 접촉자 정보도 국내 위치정보가 조기에 수집돼 신속히 파악됐다.

◇“글로벌 차원 플랫폼 나와야”

2018년 상황은 ICT 기술과 개인의 선제적 조치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린 결과다. 앞으로 더 효율적인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선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국외 동선의 경우 로밍을 사용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고, 국내 통신사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 행적 파악도 지금처럼 우리 기업과 정부에 한정된 방식으론 불가능하다. 다양한 국가의 참여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현재 KT 주도로 세계경제포럼(WEF),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에서 국제기구 차원의 ICT 기반 감염병 확산 방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KT 관계자는 “많은 국가가 참여하게 되면 세계를 돌아다니는 휴대폰 정보가 한 곳에 모이고 감염병 오염 지역 접속 기록이 공유돼 각국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기술로 확진자나 접촉자 동선 공개에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는 기지국 정보에 카드 사용 내역으로 재확인 작업을 거친 뒤 현장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또 다시 접촉자를 한 명씩 구분해 내고 있기 때문”이라며 “ICT 기술이 고도화해 얼굴을 인식하는 지능형 CCTV 등이 확대 도입된다면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web_cdn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