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봉쇄된 스포츠

입력
2020.03.04 04:30
26면
2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KB스타즈와 하나은행의 경기가 무관중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KB스타즈와 하나은행의 경기가 무관중전으로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는 꽃이 늦게 피었으면 좋겠다.’

친한 후배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이 한 줄에 가슴이 아팠다. 국내 답사여행사를 운영하는 그 친구에게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은 무척이나 잔인했다. 2월 야심 차게 준비했던 첫 해외여행 상품이 죄다 취소되며 감당하기 힘든 수수료를 떠안아야 했고, 1년중 가장 큰 대목인 봄꽃 시즌이 시작됐지만 손님을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코로나의 공습이 어디 관광뿐이겠는가. 영화관이나 공연ㆍ전시장에선 찬바람만 불고, 빈 가게를 지키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천근만근 무겁다.

스포츠도 직격탄을 맞았다. 전염을 막겠다고 무관중 경기를 펼치던 겨울스포츠의 꽃 프로배구, 프로농구가 여자농구를 제외하고 모두 리그 중단을 선언했다. 정규리그 막판 치열한 순위 다툼으로 한층 흥미를 더해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관중이 없어지더니 이젠 경기를 벌일 무대조차 사라진 것이다. 이미 시작했어야 할 프로축구는 개막을 마냥 미루고 있고, 프로야구도 1982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시범경기를 취소했고 개막 연기를 논의하고 있다. 사실상 국내 프로스포츠가 실종된 3월을 보내야 한다.

진작에 포기했던 종목도 있다. 항상 텅 빈 관중석에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가장 먼저 리그를 종료해버린 핸드볼의 결정은 그래서 더 서글펐다. ‘씨름 예능’까지 탄생시킨 씨름판도 모처럼의 부활 기회를 앗아간 코로나가 원망스럽다. 수많은 팬들 앞에서 생중계로 ‘씨름의 희열’ 초대 태극장사가 탄생됐어야 했는데, 결국 무관중으로 치러지며 씁쓸함을 남겼다.

90곳이 넘는 나라가 한국인을 입국금지 시키고 있다. 허니문을 떠났던 신혼부부들은 달콤한 신혼의 밤 대신 공항 한구석에서 모멸의 밤을 보내야 했다. 스포츠도 같은 신세다. ‘코리아 포비아’에 막혀 대회 출전이 좌절된 선수들도 여럿이다. 탁구대표팀의 경우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해선 카타르오픈 성적이 꼭 필요했는데, 카타르의 완고한 입국 거절로 결국 포기해야 했다.

봄이 왔건만 봉쇄된 스포츠는 봄을 즐길 수 없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에 갇힌 여러 군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결국 병을 물리칠 수 있는 건 그들의 희망과 의지, 연대라고 말한다. 절망스럽지만 단조롭고 꾸준한 노력들이 있어 마침내 이겨낸 것이라고.

암처럼 큰 병에 걸린 걸 알았을 때 처음엔 원망과 분노가 터져 나오지만, 이후 체념하고 받아들이며 병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비난과 혐오로는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없다. 차분히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스포츠도 우리 사회도 이 사태를 이겨낸 다음엔 그 면역력으로 더 단단해질 것이다.

스포츠는 삶의 활력소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에게 스포츠는 삶을 살찌우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단순한 신체의 증진을 떠나 보고 즐기는 스포츠로도 충분히 만족과 행복감을 얻을 수 있다. 고대 올림픽의 탄생과 프로스포츠가 생겨난 것도 그 이유 때문 아닌가.

언젠가 코로나가 물러간다고 그 후유증까지 바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어려움이 지속될 텐데 그 시름을 달래고 고통을 잊게 해줄 몰입의 대상이 필요할 것이다. 봉쇄 풀린 스포츠가 맡아야 할 가장 큰 역할이기도 하다.

예기치 못한 신천지발 코로나 대확산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 분노를 삭이고 우울함을 날려줄 슈퍼히어로의 등장을 고대한다. 지난날 박세리 박찬호 김연아 박태환 등의 놀라운 활약은 국가가 어려울 때 국민들에게 다시 일어날 희망을 선물했다. 기를 살리고 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 스포츠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돼 스포츠가 다시 활개를 펴는 날, 우리 삶의 활기도 함께 살아날 것이다.

이성원 스포츠부장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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