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화의 정중한 답장] 당신의 첫 집

입력
2020.03.04 18:00
수정
2020.03.04 19:00
25면
A시인은 그곳을 머잖아 이승을 떠나 당신이 닿을 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A시인의 그 집은 다시 가게 될 어떤 세상에서의 ‘첫 집’이 아닌가. ©게티이미지뱅크
A시인은 그곳을 머잖아 이승을 떠나 당신이 닿을 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A시인의 그 집은 다시 가게 될 어떤 세상에서의 ‘첫 집’이 아닌가. ©게티이미지뱅크

무심코 읽었는데, 진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눈에 걸려서, 그게 책장 그 위치에 있어서, 그냥 빼서 펼쳐본 것뿐인데, 하필 그 시집, 그 장이었다. 그리고 그 제목! 순간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더니 이젠 볼 수 없는 많은 얼굴을 눈앞에 데려다 놓았다. 정말, 거짓말처럼, 난데없는 소나기를 맞듯 온몸이 후들거렸다. 갑작스러운 그리움이 찾아왔다!

작년에 받은 A시인의 시집이었다. 큰 숨 두어 번만 쉬면 팔순 담벼락을 넘을 연세에도 온몸이 시가 들어오는 문인 분. 그래서 했던 말이었다. 나중에 선생님은 돌아가시면 무덤에 풀 대신 시가 돋아날 것 같다고, 그러면서 우리 몇몇은 서로 바라보는 눈이 갑자기 붉어지곤 했다. 우리가 웃으며 뱉은 ‘무덤’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무덤! 시간이 닫힌 공간. 한 사람의 사랑과 추억과 그가 보고 느끼며 살아왔던 한 세상이 닫힌 공간. 살아 있는 사람이 마주하는 공간 중에 가장 기막히고 가장 어처구니없는 공간. 처음엔 그리고 젊을 땐 그 안에 있는 사람을 그리며 울다가, 나중엔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는 그 앞에 있는 내가 서러워서, 그러다 어느 날은 내가 그 집주인 같아서 울게 되는 공간.

분명히 유쾌하게 시작된 대화였고, 그 유쾌함의 절정을 이끈 말이었다. 그러나 A시인과의 인연이 깊어진 만큼이나 각자가 지나온 시간도 그 세월만큼 깊어져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A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있었다. 무덤을 말하며 서로 눈시울이 붉어졌던 건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을 넘어 우리의 시간에 대한 공감이요 동조였다. 나를 보며 너를 봤고 우리를 봤다. 동시대를 지나가고 있는 비슷한 무리는 그렇게 애틋했다.

어느 쪽을 펼쳐도 마음의 중심 가지를 척추 가장 가까이에 두게 하는 곧은 시편들이 이어졌다. 최근 삼 사 년 사이 세상을 떠난 시인들의 이름도 보였다. 자신보다 먼저 떠난 친구요 동기를 그리는 A시인의 목소리는 잘 말린 드라이플라워처럼 담담했다. 담담해서 그 두께는 두꺼웠고 깊이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움은 나이가 들수록 두껍고 깊어진다는 걸 나는 또 그렇게 배웠다. A시인만큼 나이가 들지 않아서일까? 이젠 이곳에 없는 선배요 스승들을 남의 시집에서 글자로 만나자 모공 숫자마다 비눗물이 들어간 것처럼 온몸에서 따가운 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다 보았다. 39쪽, 어떤 집을 말하는 짧은 제목. 듣고 싶지 않은 소식처럼 불길하게 콱, 숨이 막혔다.

최근에 이사를 해서일까? 게다가 이사를 오면서 나이로 보나 변화를 싫어하는 성향으로 보나 어쩌면 ‘마지막 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일까? 제목만 봤을 뿐인데도 A시인의 그 집이 어떤 집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조명이 꺼진 위태로운 무대처럼 집도, 나도, 불안했다. 이사 온 후 내 일상을 지배했던 건 이전엔 못 느꼈던 이상한 괴력이었다. 뻔했던 게 특별한 것이 되더니 급기야는 일상이 최후처럼 매 시간 비장해졌다. 이 생에서의 내 시간이 끝날 ‘마지막 집’이라는 생각은 그렇게 오염되지 않은 진짜 나를 만나게 했다.

A시인의 시집을 잡고 있는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제목을 본 후 나는 읽어 내려가기를 억지로 멈추고 있었다. 그러나 보였다. 3행에 ○○메모리얼 파크라는 불길한 글자. 메모리얼은 그 단어만으로도 심장이 떨렸다. 꼭 외우라는 다그침처럼 쾅 와 닿는 ○○지구 ○호라는 글자가 그 아래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눈은 부릅뜨면서도 가슴은 붙잡게 하는 다섯 숫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5행에 턱 하니 자리 잡고 묘역 번호라는 문패까지 매달고 있었다. 묘역 번호... 세상 그늘이란 그늘은 다 모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아팠다. 눈을 때리며 온몸을 걷어차는 것처럼 욱신욱신, 그렇게 아팠다.

시인이 알려준 주소가 자꾸 생각난다. 기억에 새겨지는 게 무서워 슬쩍 보고 지나쳤는데도 송곳으로 찔러 파놓은 것처럼 이미 머리에, 눈에, 가슴에, 새겨져 있다. A시인은 그곳을 머잖아 이승을 떠나 당신이 닿을 집이라고 했다. 갑자기 눈에서 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 본 적도 없는 어떤 동네, 어떤 세상이 설핏 보이는 것도 같다. 떠나서 다시 닿을 집이라니! 여기를 떠나면 다시 당도할 어디가 있다니! 그렇다면 A시인의 그 집은 다시 가게 될 어떤 세상에서의 ‘첫 집’이 아닌가. 마지막 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갇혀 미리 불러들였던 슬픔과 울음이 보기 좋게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다시 시인의 시를 읽는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너, 잘 죽었다’ 로 끝낸 마지막 두 행에서 역시! 라는 탄성이 터진다. 한 생을 치열하게 완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짧고 단단하며 깨끗한 이 두 행 때문에 A시인은 또 축축한 슬픔에서 자신은 쏙 빼낸다. 대신 읽는 사람을 울린다. 열 걸음만큼 따라왔다 싶으면 또 백 걸음 훌쩍 멀리 가 있는 그에게 느끼는 경외감은 당연한 순서다. 나는 역시, 아직 멀었다.

서석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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