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언박싱 <1> 낯선 온라인 강의에 취업문은 꽁꽁… “현실 어려워도 공감의 힘 믿어요”

입력
2020.03.18 01:00
17면

젊은이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가볍게 생각한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클럽이나 PC방, 노래방, 학원 등 다중이용시설 출입을 자제하지 않는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대세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코로나19를 감기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성세대가 기성언론을 통해 덧씌운 이미지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밀레니얼은 코로나19로 달라진 사회 분위기와 심각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기성세대와 관점이 조금 다를 뿐이죠. 특히 학업과 취업, 혐오, 정치 등의 주제에 관해선 밀레니얼이 누구보다 관심이 높습니다. 코로나19 이슈와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지금, 밀레니얼이 바라본 코로나19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주제가 밀레니얼의 머리와 가슴을 뜨겁게 달궜을까요.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이승엽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이승엽 기자

◇취업 준비 분주해서 마스크 구할 시간 없어

기타 치는 프레디 머큐리(기프)=점심시간에 치과 다녀오는데, 약국 앞에 줄이 엄청 길었어. 마스크 5부제 때문인 것 같아. 그런데 우리 또래 사람들은 어떻게 마스크를 구하는지 궁금해졌어. 누구는 회사 다니고, 누구는 취업준비로 바쁜데, 그런 상황에서 시간 내기 어렵잖아. 난 태어난 연도 끝자리가 6이라 월요일에 구매했어야 하는데, 줄 서다가 그냥 돌아왔어.

부어 먹는 깡소주(부어깡)=맞아. 나도 출근하면서 사오려고 했는데 없더라고.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도 약국을 여러 군데 돌아다녔지만, 품절이라 살 수 없었어. 약국에서도 꼭 필요하면 가능한 빨리 와야 한다고 말했어.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마스크를 못 산다는 게 아쉬워.

연어는 차갑게(연어)=자취하고 있는데 마스크가 큰 고민이야. 약국 가도 매번 없다고 하고 인터넷으로 사려고 해도 매진이고. 특히 정해진 시간에 풀리는 마스크는 시간 맞추기 힘들어서 살 수도 없어. 지난주에는 어쩔 수 없이 면 마스크를 쓰긴 했는데 쓰면서도 불안했어.

매우 매운 마라탕(매마)=같은 아파트에 조부모가 살고 있다 보니까 ‘내가 걸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보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에게 옮길까 봐 불안해.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론 되도록 조부모 집에는 가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예 안 갈 수는 없잖아.

숭례문 너굴맨(너굴)=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사람들은 ‘잠깐 앓고 말겠지’, ‘주로 나이 든 사람이 걸리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아. 코로나19 사망자가 대부분 노인이라서 그런 생각을 더 하는 거 같아. 일부는 ‘할 일도 많은데 건강을 굳이 챙길 필요가 있나’라고 말하기도 해.

분노조절 잘해(분조잘)=친구가 PC방에 자주 가는데 자기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오히려 눈치가 보였다고 해. 자기만 과하게 염려하는 것 같다고.

◇온라인 강의하고 등록금 다 받겠다고?

너굴=대학 개강이 밀려서 3월 중순 이후부터 하거나, 개강해도 인터넷 강의로 대체되고 있잖아. 우리가 인터넷 강의 들으려고 등록금으로 300만~400만원 내면서 대학 다니는 건 아니잖아. 우리 학교도 미리 교수님들이 글을 올리셨어. 앞으로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고 실시간으로 접속해 들어야 할 수도 있다고. 이러고도 등록금을 모두 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기프=공감해. 4년제 대학이랑 사이버대학은 등록금 차이가 있어. 일반대학 등록금은 학기 평균 300만원이 훌쩍 넘지만, 사이버대학은 200만원 정도야. 그런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일반대학이 사실상 사이버대학처럼 돼버렸어. 화상 강의로 과제를 내준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

부어깡=예술이나 건축 분야는 더 심해. 피드백을 바로 받아야 하는 수업이 많은데, 온라인으로 수업하니까 정말 힘들겠더라. 내가 그린 작품을 보고 교수가 바로 이야기하면 고치고 보여드려야 하잖아. 이걸 화상을 통해서 하기는 쉽지 않거든.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해. 대학에서 손 놓고 있으면 정부에서 대학에 종합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줬으면 좋겠어.

매마=나도 온라인 수업 몇 번 접속해봤는데 소리가 안 들린다든지 화면이 멈춘다든지 매번 방송사고가 생겨. 학생들 얼굴을 모두 비추는 프로그램을 쓸 때는 용량이 커서 그런지 계속 튕겨 나가고. 한 친구는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술자리에서 수업 접속만 해놨다가 대화가 그대로 들려서 망신당한 적도 있어. 정상적인 수업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분조잘=그런데 등록금 반환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야. 한 학기 또는 한 달 동안 휴강하면 등록금을 면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온라인 강의는 사실상 개강한 것으로 인정되는 거잖아. 교육부도 등록금 사안은 대학에서 결정하는 거라고 선을 긋고 있잖아.

◇바늘구멍 취업문, 이젠 아예 안 보여

기프=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취업이잖아. 상반기도 하반기도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울상이야. 코로나 사태로 상반기는 공고 자체가 안 뜨잖아. 하반기엔 사람들이 몰려서 더 힘들어질 거고.

분조잘=토익 같은 자격증 시험이 연기된 것도 문제야. 검정고시도 연기됐고, 국가기술자격 검정 필기시험도 중단됐어. 하반기에 상황이 진정된다고 해도 자격증이나 점수가 없어서 원서접수 자체를 못할 수 있어.

부어깡=서류전형 통과했는데 다음 전형이 밀린 경우도 있어. 긴장감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지.

연어=공무원 시험도 1차 시험 밀리면서 2차 시험이랑 간격이 줄어들면서 준비하는 시간이 부족해졌어. 망했다는 친구들도 많아. 이러다가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 같아 걱정돼.

매마=심지어는 확진자랑 접촉하기만 해도 응시자격이 박탈되는 일도 있어. 오랜 기간 준비했는데 시험장도 못 가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너굴=아르바이트 자리도 안전지대가 아니야. 학교 후배는 마지막 학기 남기고 휴학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시험도 준비했거든. 일하던 키즈카페에서 더 이상 나오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자리도 강제 휴무로 사실상 잘렸어.

부어깡=취업준비생들이 많긴 하지만, 우리는 성인이고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맞잖아. 정부 입장에선 더 시급한 문제들이 많으니까 지원 받을 기회도 적고 우선순위에서도 밀리는 것 같아. 기회는 줄어들었는데 소속된 곳이 없으니까 보호받을 수 있는 곳도 없는 셈이지.

YBM 한국토익위원회가 2월 29일로 예정돼있던 토익(TOEIC) 시험을 취소하면서 홈페이지에 게시한 안내문. 토익위원회 제공
YBM 한국토익위원회가 2월 29일로 예정돼있던 토익(TOEIC) 시험을 취소하면서 홈페이지에 게시한 안내문. 토익위원회 제공

◇공감능력으로 혐오를 종식시킬 수 있어

부어깡=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퍼졌을 때 논란이 됐던 이슈 중에 중국 혐오가 있었잖아. 그런데 단순하게 중국을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었는지 의문이야.

너굴=중국에서 발병했다는 게 학계 정설이기 때문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가 돼. 그런데 그것 때문에 중국이나 중국인을 혐오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어.

연어=코로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보면 사람들 마음 속에 혐오의 감정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앞장서서 ‘중국 코로나’, ‘우한 코로나’로 부르기도 하잖아.

분조잘=그건 아마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 있다고 생각해. 유럽에서 일어난 동양인 폭행 사건도 비슷한 것 같아.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매마=확진자를 대하는 분위기도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 물론 부주의했던 확진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염병의 피해자잖아. 그런데 확진자 동선을 낱낱이 공개한다든가 그들을 중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묘사하기도 하잖아.

연어=그런데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희망도 봤어. 지역감정과 배타성을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광주에서 달빛동맹으로 대구지역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도와주는 모습처럼 훈훈한 이야기도 나오잖아.

부어깡=이런 때일수록 공감능력이 중요하다고 봐. 서로가 혐오를 주고받는 분위기 속에서 나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 같아.

분조잘=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봤던 인상 깊은 사진이 있어. 우리는 건강하니까 마스크를 양보하자며 택배기사에게 줄 마스크를 문 앞에 내놓는 거였어. 공감을 통해 혐오를 종식할 씨앗을 본 것 같아.

연어=그 씨앗을 우리 세대에서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해. SNS를 통해 밀레니얼은 ‘#힘내라_대구ㆍ대한민국’과 같은 해시태그로 공감하고 있어. 혐오를 이겨낼 따뜻한 힘이 느껴져.

기프=혐오는 우리 세대에게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해. 밀레니얼 세대는 혐오 문제를 다른 누구보다 강하게 인식하고 있어. 혐오의 결과는 또 다른 혐오, 상황의 악화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거지.

연어=맞아. 혐오라는 말을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내가 누굴 탓하면 그게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잘 알지. 일부 커뮤니티를 보면 혐오 감정이 여과 없이 배출되기도 하지만, 익명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 부끄럽다는 건 알고 있는 것 같아.

지난달 29일 청와대 부근에서 열린 '중국인 입국금지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뉴스1
지난달 29일 청와대 부근에서 열린 '중국인 입국금지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뉴스1

◇정치권은 이 판국에도 싸우니 곱게 보일 리가

너굴=과거 메르스 사태와 비교할 때 전염병을 컨트롤하는 과정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분조잘=정부의 대처도 시민의식도 조금 성장했다고 봐. 물론 좀더 치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매마=나도 그렇게 생각해. 특히 질병관리본부의 발빠른 대처와 투명한 정보공개가 신뢰를 얻었잖아. 그런데 여전히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소모적인 논쟁을 유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한 생각이 들기도 해.

부어깡=다만 정치는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 한숨이 나와. 건설적인 대화가 필요한데, 서로를 향한 공격에만 집중하잖아. 신천지 이만희 시계만 해도 진위 여부가 궁금한 게 아니잖아. 정부가 신천지에서 어떤 정보를 파악했는지가 중요하잖아. 여야가 어떤 식으로 대책을 마련해나갈지 함께 고민할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기프=이분법적이고 정파적인 사고가 전염병이라는 재난 상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게 문제야. 힘을 합쳐 극복해도 모자랄 판국에 정치인들은 여전히 네편내편 따지면서 싸우고 있으니 좋게 보일 수가 있나.

분조잘=정치의 속성상 정파 논리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해도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해. 야당은 계속 같은 질문만 하고, 정부도 원론적인 대답만 하고 있잖아.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빈틈이 있다면 그걸 지적해서 고쳐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연어=지방단체장들의 모습도 좀 실망스러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앞장서는 모습을 기대하는데 그런 단체장이 몇 명이나 있었을까. 주민들을 먼저 생각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준 단체장이 있었는지 따져보면 기억나는 사람이 없어.

너굴=그런 실망스런 모습만 보다가 정파 논리를 초월한 듯한 안철수의 봉사활동은 신선하게 다가왔어. 본인 위치에서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을 한 거잖아. 방호복 입고 땀 흘리는 모습에 진정성이 느껴졌어.

기프=한편으론 이 난국에 안철수의 행보는 사실 정상적인 모습이잖아. 특이할 것도 없는데, 정치권이 하도 상대를 헐뜯고 깎아 내리려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인지 더 빛나 보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

연어=그렇지. 우리 세대는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잖아. 정치권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야.

너굴=우리 세대 중에 정치에 체념한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야. 의사표현 방식이 달라진 것뿐이야.

부어깡=굳이 정치를 통해서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고 있는 것 같아. 직접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여론을 만들 수 있는 개인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정치로 싸우기 싫은 세대가 된 거지.

정리=이태웅 인턴기자

참여=강보인, 김예슬, 이주현, 이혜인, 임수빈 인턴기자

※ 이슈와 화젯거리를 이야기할 때 기성세대는 자주 핏대를 세웁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밀레니얼 세대는 의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견 표출의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밀레니얼의 시각을 담아 한국 사회를 ‘언박싱’ 해보겠습니다. 밀레니얼의 솔직한 체감지수를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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