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특수고용직의 아이도 근로자의 아이와 다르지 않다”

입력
2020.03.19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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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방과후강사노조 조합원들이 5일 부산교육청 앞에서 개학 연기에 따른 생계대책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방과후강사노조 제공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방과후강사노조 조합원들이 5일 부산교육청 앞에서 개학 연기에 따른 생계대책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방과후강사노조 제공

교육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개학을 추가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한 17일 밤, 한국일보와 통화한 부산의 방과후강사 A씨는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개학이 당초(3월 2일)보다 5주나 연기되면서 한달 넘는 기간의 수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의 벌이는 주 40시간 일하는 근로자의 최저임금(179만5,310원)보다 적지만 한부모인 그에겐 절실한 돈이다.

사상 초유의 4월 개학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지킨다는 대의로 결정됐다. 하지만 그 중요한 결정에 A씨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노동자)들의 이해는 크게 감안되지 않았다. 일할 때는 고용주의 지시를 받는데 정작 법적으론 자영업자인 사람들 말이다. 평소에도 이들에겐 노동기본권은 남의 얘기지만, 재난상황에서 이들은 더욱 사각지대에 놓였다.

학교에서 일하는 대표적인 특고 노동자인 방과후강사들은 약 12만명. 이들은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 넘게 수업을 못하게 됐다. A씨처럼 자신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방과후강사들은 배달이나 대리운전 같은 또 다른 특고 노동으로 몰리고 있다. 이에 방과후강사들은 학교비정규직과 함께 3월 초부터 교육부에 생계대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학교 소속 ‘근로자’인 학교비정규직을 출근하게 하는 대책만 내놨다.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전달하려 유은혜 부총리께 면담을 신청했지만 만나주지 않았다”며 지난 16일부터 1인 시위 중이다.

개학 연기는 학교 밖 특고 노동자들도 곤란하게 만든다. 돌봄공백은 길어졌는데 근로자가 아니라 가족돌봄휴가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6살 자녀를 둔 골프장 캐디 B씨는 “더 이상 부모님께 아이를 맡길 수 없어 고용노동부에 자녀돌봄지원금을 문의하니 ‘안 된다’는 답만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신종 코로나는 모든 국민을 향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근로자와 기업만을 향하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도, 경영안정자금 대출도 특고 노동자에게는 모두 남의 얘기다. 근로자 생활안정자금 융자조차 산재보험이 없는 방과후강사나 플랫폼노동자는 비껴간다. 그나마 추가경정예산 중 2,000억원이 고용소외계층을 위해 쓰이게 됐지만, 특고 노동자만 약 221만명(2018년 기준)인 상황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혜택이 고루 갈지 미지수다. “특고 노동자의 아이도 근로자의 아이와 다르지 않다”던 B씨의 말이 가슴에 울린다.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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