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담] 미증유의 코로나 경제위기, ‘전례 없는’ 재정 역할 절실

입력
2020.03.19 2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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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의 경제ㆍ시장 전망 

 폭락 증시 반등해도 경제 파장 오래갈 듯 

 주식ㆍ원화 요동에 외인 자금 이탈도 우려 

 금리인하 등 각국 금융완화책 효과 제한적 

 초비상 재정정책 통한 위기 돌파가 최우선 

 추경 최대 규모로 하되, 효율적 집행이 관건 

 ‘기본소득’식엔 반대, 재난지원금엔 동의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오른쪽)이 17일 한국일보사에서 장인철 논설위원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내외 금융시장 격동 및 경제 상황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오른쪽)이 17일 한국일보사에서 장인철 논설위원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내외 금융시장 격동 및 경제 상황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글로벌경제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역병에 휘말렸다. 코로나의 강력한 전염성은 이미 세계 교역 흐름을 괴멸적 상태로 몰아 넣었고, 그 여파로 안 그래도 어려웠던 글로벌 경기는 또다시 심각한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위기의 징후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곳이 증시다. 과거 대공황 때도 그랬고, 우리 외환위기 때도 증시는 위기의 바로미터처럼 격동했다. 이번에도 코로나 팬데믹이 선언되자 세계 증시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격동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연일 10% 넘게 폭락하고 있고, 국내 증시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같은 날 한꺼번에 사이드브레이커가 걸리는 등 역사를 갈아치울 정도의 충격파가 발생했다.

정상 궤도에서 크게 이탈한 국내외 증시 흐름과 그것이 암시하는 메시지를 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센터장의 의견을 통해 분석해 보았다. 김 센터장은 1996년 자본시장 애널리스트로 출발해 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격동하는 상황에서 차분하면서도 정확한 시장분석으로 정평을 얻은 업계의 대표적 현장 이코노미스트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라 글로벌 및 국내 증시가 입은 타격은 어느 정도인가. 과거 국내외 역사적 증시 폭락세와 비교하면 어떤가.

“올해 최고점 대비 국내 증시는 약 25% 정도 조정 받았는데, 사실 이번보다 더 떨어진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최근 3주 조금 넘는 기간에 30%가 빠졌다. 1920년대 대공황도 있었고 1987년 ‘블랙먼데이’도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빠지는 건 처음이다. 지금 투자자들은 정말 눈을 의심하면서 미국 증시가 대공황 때보다 훨씬 빨리 가라앉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보다 덜 떨어진 건 그 동안 별로 오르질 않아서다. 미국은 사상 최고가에서 떨어지는 건데, 한국은 2011년 이후 9년 동안 주가가 장기 횡보를 해서 지금 레벨은 2006년 정도다. 유럽 국가들 중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40%가 넘는 조정을 보이고 있다”

◇주요국 증시 고점 대비 하락세




<자료: 신영증권>

-증시 뿐만 아니다. 통화와 채권, 금이나 석유 등 상품시장까지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의 전반적 격동을 어떻게 보고 해석해야 할까.

“위기 상황이 닥치면 유가증권이든 상품이든 격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상황이 어디까지 악화할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타격이 어느 정도쯤 될 것이라는 추정이 있어야 지금의 증시 하락폭이 지나친 건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데, 그걸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지난 1~2월 중국 산업생산이 마이너스 13%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분석가들은 넉넉잡아 5% 내외 마이너스가 나올 것이라는 컨센서스를 형성했는데, 그걸 훨씬 넘는 충격이 나타난 거다. 그러니 지금 증시 하락이 지나치다거나 투자자 공포가 지나치다고 말할 수 없는 거다. 국내적으로는 주식과 원화 하락, 글로벌 금리 격동에 따른 외인자금 추가 이탈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코로나19 이외에 글로벌 증시 격동에 영향을 준 다른 배경이나 원인도 있는가.

“위기 상황에서는 잠자던 악재들도 깨어나 작동한다. 난 이번 코로나 위기로 인해 장기 저금리에 따라 누적된 모순도 불거지고 있다고 본다. 어떤 의미냐 하면 2008년 금융위기 이래 미국이나 우리나 파장이 너무 커서 그랬는지, 기업 부실을 그냥 살려두고 넘어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만 해도 상장 제조업체 중 3분의 1이 이 저금리 하에서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커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거다. 미국도 지금 일부 에너지기업들의 부실은 언제라도 악재로 돌출할 정도로 쌓여 있다. 저금리로 연명하게 된 이런 식의 잠재 부실에 대한 시장의 두려움도 이번 폭락 국면에 작용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국내외 증시가 본격 격동한 건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인 지난 주말부터다. 향후 국내외 증시 흐름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일단 앞으로 한 차례 정도 아주 강한 반등이 나타날 거라고 본다. 코로나 진정세가 확인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증시 역사에서도 월간 단위로 코스피가 가장 많이 올랐던 게 1998년 1월이다. 한달 새 50%나 올랐다. 그때가 외환위기 직후다. 외환위기 때 폭락했던 걸 그렇게 일부 만회하고 또 떨어지는 흐름을 탔다. 이번에도 코로나 확산이 완화되는 시점에 풀린 유동성의 힘으로 주가가 한 번은 굉장히 강한 반등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후는 경기를 반영할 것이고, 그렇게 좋은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 타격이 조기에 정상화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실 그게 문제인데, 증시 폭락 이후 각국이 엄청난 대응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기준금리를 1% 포인트 전격 인하하고, 1인 당 2,000 달러 현금 지급까지 추진하는 미국에 이어 유럽ㆍ일본도 대대적 금융완화에 착수했다. 우리나라도 0.5% 포인트의 파격적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하지만 당장 시장의 기대는 별로 크지 않아 보인다. 각국 대응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금 각국 조치들은 위기 때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템플릿’(즉각 가동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된 정책 패키지)을 따르는 것 같다. 금리 낮추고 돈 푸는 건 우리도 2008년도에 해 본 경험이 있다. 다만 규모나 강도가 점점 크고 강해지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시장에선 위기의 원인인 코로나를 제어할 방안조차 없는 가운데 허겁지겁 수습책부터 쏟아지는데 대해 약간 냉소적인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이번 위기가 과거와 다르다는 점도 각국 대응책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되는 요인이다. 2008년 금융위기만 해도 금융에서 문제가 생겨 실물로 번졌다. 리먼브라더스 라고 하는 거대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신용경색이 실물에도 영향을 주는 흐름이었다. 그 경우 중앙은행이 나서 돈을 풀고 신용경색을 풀어주는 방식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와 교역 위축 등 실물에서 먼저 위기가 발생하고, 그게 금융시장으로 전이되어 실물과 금융위기 상황이 함께 나타나는 식이 됐다. 선후 관계와 인과 관계가 과거와 다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통화금융정책보다 재정정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재정정책이라면 우리도 지금 1차 추경에 이어 곧바로 2차 추경이 거론될 정도로 적극적인 분위기다.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는 대규모 추경 등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말하는 건가.

“우선 재정정책 효과를 기대하는 건 실물경제 쪽으로 자금 공급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가 초저금리에 들어갔는데, 그 풀린 돈이 어디로 갔느냐 하면 실물 쪽으로 간 흔적이 별로 없다. 영국은 금융위기 이전 산업생산이 100이라면 지금 저금리 12년이 지났는데 아직 93 수준이다. 미국은 그나마 셰일가스 혁명 등에 힘입어 103 수준이다. 결국 저금리 자금이 실물보다는 자산가격을 끌어올리는 쪽으로만 작동한 셈이다.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낫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재정정책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곳에 돈을 꽂아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금은 어려움에 빠진 부문에 돈이 신속ㆍ정확하게 공급돼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재정정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예산을 생산적으로 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작전 없이 무턱대고 전투병만 늘린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건 아니잖나. 재정정책에서 재원 확보보다 효율적인 씀씀이가 중요한 이유다.”

-앞으로 어느 정도 추경 규모가 적정할지 가늠이 되나.

“적정 규모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해야 된다는 데엔 동의한다. 국가채무가 아주 빠르게 국내총생산(GDP)의 40%에 이르러 걱정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은 재정을 써야 할 때라고 본다. 우리 경제가 GDP의 70% 정도의 국가채무는 감당할 수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아까 얘기했다시피 추경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게 효과적인 집행 방안이다. 기업만 해도 지원이 어렵지 않은데, 소상공인 같은 경우는 지원 방법이 막막하다. 그렇다고 ‘기본소득’ 같은 이름을 붙이는 건 반복성 지속성 때문에 반대한다. 일시적 재난지원금이나 재난소득 정도면 좋겠다.”

-코로나19에 따른 금융시장 격동은 결국 실물경제 전반에 가해질 충격의 공포가 선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 확산 양상을 최선의 경우와 최악을 경우로 나눠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추정이 가능할까.

“적어도 2월, 3월 성장은 그냥 날아가는 게 될 것 같다. 좀 긍정적으로 봐서 4월 초 정도까지 미국이나 유럽이 잦아든다고 해도, 제 생각에는 작년보다 성장률이 높아질 나라는 거의 없을 것 같다. 상반기나 7월까지 가면 거의 글로벌 경제 전체가 성장을 못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걸 계측해서 말하긴 힘들다. 우리나라는 이주열 한은 총재께서 2.1% 성장은 어렵겠다고 했는데, 그조차도 매우 신중하게 말씀하신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해서 코스피나 코스닥이 보다 견고해지는데 가장 절실한 정책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증시가 견고해지려면 기업의 수익성이 좋아져야 한다. 하지만 어디를 봐도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증시 논리로만 얘기하면 생산성을 높이는 지속적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은 구조조정 말하면 돌 맞기 십상이다. 그게 우리 사회의 딜레마인 것 같다. 인공지능(AI)이나 바이오산업 쪽의 움직임이 나름 활발하지만 과거 벤처붐처럼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에 붐이 조성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고, 결국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선택을 감당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인터뷰=장인철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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