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우리 사회의 기저질환

입력
2020.03.1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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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19일 방호복을 입고 교대근무를 하러 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19일 방호복을 입고 교대근무를 하러 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코로나19의 국내 치명률은 1% 수준이다. 그러나 감염자가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을 갖고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사망자 특성(16일 0시 기준)을 보면, 75명 중 74명에게 기저질환이 있었다. 심근경색, 뇌경색, 부정맥 등 순환기계 질환이 62.7%로 가장 많고, 당뇨병이나 갑상선 기능 저하증 등 내분비계 질환이 46.7%로 뒤를 이었다(중복집계). 정신질환(치매, 조현병)이 25.3%, 호흡기계 질환(천식, 폐렴)은 24%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치명률도 높아져, 80세 이상은 9.26%로 치솟았다.

□ 코로나19가 파고든 건 신체의 취약점만이 아니다. 첫 확진자 발생 이후 두 달,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여러 기저질환도 드러냈다. 바이러스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을 덮쳤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콜센터 상담사들은 바이러스가 코끝까지 덮쳐왔는데도 마스크도 없이 붙어 앉아 종일 ‘말’을 해야 했다. 안전보다 효율을 우선으로 삼아야 했던 그 하청 노동자들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대기업 정규직은 재택근무라도 하며 이 시절을 견딜 수 있지만,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다. 장애인 확진자의 이중고는 가늠조차 어렵다. 우리가 쉽게 ‘소외계층’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이번에도 지원책에서 소외됐다.

□ 신천지 예수교의 실체는 어떤가. “바이러스 걸린 사람도 나오면 다 고쳐주신다”며 군중 집회를 주도한 개신교 목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의 대리인을 감히 자처하며 혹세무민한 이들에게, 종교인은커녕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 의식이 있기나 한 걸까. 중국인 유학생이 7만명이나 된다는 통계에도 우리는 놀랐다. 그 뒤엔 중국인 유학생이 주요 수입원이 된 지 오래인 사립대학들의 취약한 재정 실태가 있었다. 코로나19 초기 표출된 혐오와 차별의 바이러스도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 모두 알고 있었으나 눈감았고, 어쩔 수 없다면서 합리화했던 우리 사회의 환부다. 그러니 코로나19는 어쩌면, 완치율이나 치명률 같은 숫자 이상의 과제를 속속 남기고 있는지도. 바이러스가 언제 사라질 지 모르지만, 그 뒤엔 공동체의 기저질환을 대면하고 치료에 머리를 모아야 하는 것이다. 방치하면 우리 사회의 치명률은 더 높아질 테다. 다행히 실체를 도통 알 수 없고 변이마저 자유로운 바이러스보단, 해법이 쉬운 문제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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