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덫에 걸린 윤석열

입력
2020.03.20 18:00
26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총선 대비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10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총선 대비 전국 지검장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증거가 있습니까. 국감장에서 정말… 저는 그 사건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내용을 모릅니다… 이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2018년 국감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장모 의혹을 제기한 야당의원 질의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듬해 7월 열린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장모에 관한 의혹이 다시 떠올랐으나 “그런 사건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윤 총장의 답변에 별다른 검증 없이 넘어갔다. 당시 윤 총장이 여권에서 ‘정의로운 검사’의 상징으로 떠받들린 터라 웬만한 흠집은 봐주자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 수면 아래 묻혔던 윤 총장 장모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언론의 추적 보도와 피해 당사자들의 고소ㆍ고발이 잇따르면서 최근 검찰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윤 총장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 이전에 윤 총장 장모가 2013년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사실을 시인했는데도 처벌받지 않고 넘어간 석연찮은 정황이 화근이다. 게다가 사실상 재수사에 나선 검찰이 수사를 미적대 공소시효가 코앞에 닥친 게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 공교롭게도 장모의 혐의가 사문서 위조인지라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수사에서 검찰이 표창장과 인턴증명서 위조 의혹 등에 유독 엄중했던 행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조 전 장관 청문회 당일 공소시효 만료 임박을 이유로 소환 조사도 없이 부인 정경심 교수를 급하게 기소한 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과연 검찰이 조국 가족을 수사한 것과 같은 의지로 윤 총장 장모와 부인 관련 사건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셈이다.

□ 눈여겨볼 것은 검찰뿐 아니라 경찰도 수사에 나선 것이 예기치 않은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과 의정부지검 등 두 곳에서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총장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는 점도 변수다. 특히 몇 달 앞으로 다가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은 윤 총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적당히 덮었다가는 ‘공수처 1호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반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잠시 중단한 윤 총장으로서는 이 사건을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 탄핵을 벼르는 보수 야당에는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다. 총선 후 몰아닥칠 일장풍파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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